레닌주의 전위가 아닌 아나키스트 조직을

레닌주의 전위가 아닌 아나키스트 조직을

웨인 프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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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mitted by dogej63 on April 2, 2023

역자 주 - 웨인 프라이스는 오랜 기간 아나키스트이자 작가로 활동해왔으며, 현재 브롱크스 기후정의 북부회의와 뉴욕 메트로폴리스 아나키스트 협동 평의회(MACC)의 구성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위당”이 아닌 아나키스트 조직은 왜 필요한가.

오늘날 오직 소수만이 혁명적 아나키스트를 자처한다. 대다수의 인민들은 아나키즘이나 다른 형태의 급진주의를 거부한다. (이러한 사상들에 대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우리 아나키스트들이 중요하게 고민하는 지점은 우리 혁명적 소수와 중도 · 비 혁명적 다수의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다. 혁명적 소수는 역사발전의 법칙에 따라 다수(최소한 노동계급)가 언젠가 혁명적이 되는 것을 기다려야 하는가? 이러한 경우에, 소수인 우리는 아무것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혹은 소수의 급진주의자들이 스스로 조직하여 그 자유의지주의적 이념을 퍼트려 역사적 발전을 도와야 하는가? 이 경우, 혁명적 소수자의 조직은 하향식의, 중앙집권화 된 방식으로 조직될 수밖에 없는가? 아니면 그 조직은 급진적으로 민주적인 연방의 형태로써, 자유라는 자신의 목적을 체현할 수 있는가?

아마도 오늘날 좌파세력 중 가장 흥미로운 경향성은 조직과 계급투쟁을 지향하는 아나키즘의 성장일 것이다. 이 경향성은 국제 정강주의와 라틴 아메리카의 ‘에스페시피스무’1) 등을 포괄한다.(정강주의는 1926년의 아나키스트 총동맹 조직 정강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2) 심지어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도 “‘정강주의’는 현대 아나키즘 내부의 더 좌익적 조류”3)라 인정한다.

조직지향적 · 계급투쟁적 아나키즘의 중심에는 아나키스트들이 그 신념에 따라 스스로를 조직하여야 한다는 믿음이 깔려있다. 이는 특히 반反 권위주의적 사회혁명이 국제 노동계급과 모든 억압된 이들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에 동의하는 이들에게 특히 유효하다. 그들은 아나키스트들의 구체적이고 자발적인 연합을 조직해야 한다. 이는 소그룹들의 민주적 연방의 형태가 될 것이다. 이러한 조직은 정치적 글을 출판하고, 그 이상을 전파하려 노력할 것이다. 계획적이고 전술적인 단결을 통해 그 구성원들은 노동조합이나 지역 조직이나 반전 그룹과 같은 더 광범위하고 다차원적인 연합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혁명적 시기에 노동자와 지역의 평의회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아나키스트 조직들은 “정당(政黨, party)”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조직의 목적은 권력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조직은 대중조직을 장악하고 이끌거나 국가권력을 탈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과 실천을 통하여 투쟁을 선도하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법은 양면으로 공격받아왔다. 한편으로는 반조직적 아나키스트(개인주의자들, 원시주의자들, “후기좌파”들)의 공격이 있다. 이들은 가장 느슨한 형태(“네트워크”)로만 존재하는 지역 집단만을 인정하려한다. 그들은 조직지향적 아나키즘이 새로운 권위주의 집단을, 결과적으로 레닌주의적 정당을 건설하려는 시도라 비난한다. 진짜 레닌주의자들은 조직지향적 아나키즘이 레닌주의적이지 않다 비난한다. 이 주제에 대하여 레닌주의자가 저술한 유일한 논문4)은 “1926년의 정강주의와 볼셰비즘 사이에는 정치적으로 큰 차이가 존재한다”고 선언한다. 이 논문은 “정강주의와 자유의지주의 전통의 차이가 일부 아나키스트 비평가들에 의해 과대평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강주의자들은) 볼셰비키가 되기에는 너무 아나키스트이고, 아나키스트가 되기에는 너무 볼셰비키적”이라고 논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정강주의가 레닌주의의 중앙집권적 전위당 개념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노동자 국가 개념을 포괄하는 것이다. 반조직적 아나키스트들과 레닌주의자들은 급진적으로 민주적이고, 비권위주의적이며 연방적인 혁명적 조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아나키즘 운동이 자유로운 사회를 확보하는데 실패해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들은 모든 성공한 혁명은 레닌주의 정당이 선도한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아나키스트의 반박은 당연하게도 레닌주의적 “성공”은 결국 수천만의 노동자와 농민을 죽인 끔찍한 전체주의 국가를 낳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자본주의의 철폐가 이러한 “성공”으로 귀결하지 않기를 소망한다. (또한 레닌주의의 모든 변종들도 산업화된 제국주의 국가에서의 노동계급혁명이라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핵심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완전히 실패했다는 것도 언급하도록 하자.) 여전히 문제는 남아있다. 어떻게 하면 아나키즘이 실패와 패배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스탈린주의적 국가를 건설하지 않으면서 국제 자본주의를 철폐할 수 있는가? 조직지향적 아나키즘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세밀하게 설계되었다.

자유의지주의적 (혹은 자치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조직 건설에도, 아나키스트 조직건설과 유사한 논쟁들이 발생한다. C.L.R. 제임스와 라야 두냐예프스카의 분열 과정에서 분명한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는 평의회 공산주의 운동에 관한 여러 이론가들의 다른 관점으로 인한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의 〈바르바리 사회주의자〉 그룹은 조직지향적인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와 반조직적인 클로드 르포르로 분열되었다. 〈바르바리 사회주의자〉의 영국 내 동조자였던 모리스 브린턴 등의 〈연대〉는 조직지향적 입장을 취했다.

이 글의 나머지 부분에서, 나는 이러한 종류의 조직에 관한 아나키스트의 논쟁들을 검토하고자 한다. 검토되는 논쟁에는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들과 아나키즘적 코뮌주의자들의 역사적 논쟁 또한 포함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레닌주의 정당에 대한 아나키즘적 비판을 검토하고자 한다. 러시아 혁명을 검토하는 것으로서, 레닌주의적 중앙집권의 필요성이 단지 허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보이고자 한다. 볼셰비키 정당은 사실상 아나키스트 연방으로 존재할 때에만, 러시아혁명을 선도할 수 있었다.

혁명적 아나키즘 정치 조직

많은 아나키스트들은 인민들이 권위주의 사회의 무가치함을 인지할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두 함께, 마치 한 명처럼, 한 순간에, 인민들은 자신들의 소외를 직시하고, 일어서서, 사회를 환수할 것이다. 이 관점은 때로는 “자율주의spontaneism”라 불린다. 불행하게도 이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장기적으로 인민들은 다차원즉으로 급진화된다. 보수적 시기에 인민들은 한명씩 혁명적으로 변해간다. 정세가 급진적으로 변해 갈수록, 인민들은 그룹 단위로, 무리 지어 혁명적으로 변한다. 상황이 급진적이 되어 가면 계층들은 혁명적이 되고, 반란의 시기에는 대중 전체가 봉기할 것이다. 하지만 새로이 급진화된 인민들의 다수는 목적이나 전술을 고려해본 적이 없다. 그들은 에너지로 가득 차있지만, 경험을 통해 생각을 정리해내기 전까지는 혼란과 불확실로 가득 차 있기도 하다. 이러한 시기에 개량주의자들이 대중을 옛 방식으로 오도하거나 권위주의 집단이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는 것은 쉬운 일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제3세계”에서 발발한 혁명들의 씁쓸한 역사가 이를 보여준다. 최근의 이란 혁명은 아야톨라에게 권력을 쥐어주었고, 아르헨티나의 반란은 단지 조금 더 좌파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건설했을 뿐이다. (물론 아르헨티나와 라틴아메리카의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노동대중과 다른 대중의 집단과 계층이 급진적이 되면, 그들은 스스로 조직하여 그 이상을 효과적으로 (아직 급진적이 되지 않은) 대중에게 퍼뜨릴 기회를 얻게 된다. 이것은 모든 억눌린 대중의 자기 조직화와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것은 자기 조직화의 필요불가결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그룹(개량주의자들이나, 새로운 혁명적 지도자를 추구하는)들은 권위주의적 방식을 따라 조직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은 권위주의적인 것이기에 이것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부가 자유의지주의적이고, 평등주의적이며, 협동적인 방향으로, 즉, 아나키즘이나 다른 반 권위주의적 방향으로 조직할 가능성은 열려있다. 우리가 노동자 계급 혁명의 패배라는 재앙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매우 중요하다.

정치적 조직은 반 권위주의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고, 서로 교육하며, 이론과 전략전술을 발전시키고, 현재의 상황을 분석하고 그 대응책을 만들며, 사회주의 사회의 도상을 그려내는 것을 도울 것이다. 반 권위주의자들은 그들이 다른 인민들로부터 배운 것을 논의하고, 다른 이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논의할 수 있다. 조직의 일부가 되는 것은 이들이 보수화됨으로써 사회 전체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나키스트 폴 굿맨이 말한 것처럼 “200명의 같은 생각을 하는 무리를 찾고 만들어낼 수 있다면, 미친 세상 속에서 자신이 정상임은 알 수 있다.”5)

여기에서 고민해야 할 문제는 혁명적 결론에 도달한 소수와 혁명적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비 혁명적인 다수(정확하게는, 다수가 혁명적이 되면 곧 그것이 혁명적 시기를 이룬다!) 사이의 관계의 문제이다. 자율주의자들과 반조직적 아나키스트들은 이것을 문제라 보지 않는다. 그들은 이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한다. 그들은 혁명적 소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곧 권위주의라 생각한다. 그들은 부정의 세계에 살고 있다. 혁명적 소수와 다수 대중의 분열에서 권위주의가 발생한다는 것을 인정할 때에만 권위주의의 위협을 막아낼 수 있다. 그리고 조직지향적 아나키즘은 이러한 분열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이며, 레닌주의와는 분명히 다른 실질적 정치를 통해 분열을 극복하는 방법이다.

대중 조직 내에서 혁명적 아나키스트 연방은 두 가지 혼합된 과제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스탈린주의자들, 사회민주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 파시스트들처럼 반드시 생겨날 권위주의적 조직과 투쟁하는 것이다. 이들 모두는 노동자의 자신감을, 인민의 주도권을 약화시키려 할 것이다. 우리는 이들과 논쟁하여야 하고, 이들과 투쟁하여야 하고, 노동자 · 여성 · 소수 인종 · 소수 민족이 자신감을 가지고, 스스로를 위한 권력을 확보하며, 위로부터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기댈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다른 임무는 우리와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는 다른 개인이나 그룹들과의 동맹을 만드는 것이다. 그 누구도 온전한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를테면, 북미의 거대한 사회 내에서, 단 하나의 (“전위”)조직이 모든 최고의 투사들을 가지고,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 혁명적 아나키스트들은 반 권위주의적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모든 그룹들과의 통일전선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언급한 문제 대부분은 1907년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국제 아나키스트 총회에서 제기되었다. 이 총회에는 유럽, 북남미 등지에서 모인 약 80여명의 아나키스트들이 참여했다. 이들 중에는 엠마 골드만과 같은 당대의 저명인사들 또한 있었다. 그 중 프랑스의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였던 피에르 모나트는 아나키스트들이 노동조합 안으로 들어가 노동조합의 조직과 건설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이 아나키스트들이 소그룹으로 고립된 상황을, 무의미한 반란과 테러리즘에 참여하는 것으로 국한되는 상황을 타파할 것이라 주장했다. 그는 이것이 아나키스트들이 노동자들과 만나고 노동자들의 삶과 투쟁에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이라 선언했다.

그에 반대한 것은 이탈리아의 아나키즘적 코뮌주의자(이러한 범주화는 잘못된 것이다.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들은 그들의 목표가 아나키즘적 코뮌주의에 있다는 것에 동의하고, 아나키즘적 코뮌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이 가치 있다는 것에 동의하였다.)였던 에리코 말라테스타였다. 그는 아나키스트들이 노동조합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동의하였다. 하지만 그는 아나키스트들이 노동조합 안에 녹아들어야 한다는 개념에 반대하였다. 말라테스타는 노동조합이 그 자연스러운 속성에 따라 (보수주의자, 국가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까지) 다양한 의식 수준의 노동자들을 포괄해야 하기에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그는 노동조합의 책무가 더 나은 자본주의 체계 아래에서 더 나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위해 교섭하는 것이기에, 혁명적 상황이 오지 않는 이상 노동조합은 다수 구성원의 보수적 의식 수준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실질적 필요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그렇기에 말라테스타 등은 아나키스트 노동자들은 오직 아나키스트로만 구성된 조직을 구성해야 하고, 아나키즘적 이상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이 조직은 노동조합 안팎에서 기능하여 노동조합의 문제만이 아니라 모든 계급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탄압에 대항한 투쟁 역시 다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많은 좌파들은 레닌과 “경제주의자”들(노동조합 조직에만 집중하려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논쟁에 대해서는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를 통해 상세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동일한 것에 대한 논쟁인 말라테스타-모나트 논쟁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국제 볼셰비키 경향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놀라움으로 “정강주의자들은 민주주의적 권리를 확대하고 지켜내려는 투쟁에 참여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이들이 자본주의 국가의 작동을 상대적으로 깊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들이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와 동형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언급한다.)

아나키스트들이 노동조합과 함께 하는 것의 가치에 있어 모나트는 옳았다. 이 방식을 통해 아나키스트들은 고립을 탈피하고 노동자와 다른 인민대중들 사이에서 큰 영향력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말라테스타 역시 옳았다. 한때 투쟁적이었던 프랑스 노동조합(C.G.T.)은 점점 보수화되어갔다. 노조 위원장들이 최초의 아나키즘으로부터 유지하였던 것은 노동조합을 사회주의 정당과 분리시키려는 열망뿐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프랑스 노동조합들은 전쟁과 정부를 지지했다. 모나트는 노동조합의 관료화와 친親 제국주의화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들은 프랑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하였고, 스페인의 노동조합(C.N.T.)에서 비슷한 경향을 관측했다. 프랑스의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들과는 달리, 스페인의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들은 C.N.T. 안에서 오직 아나키스트로만 구성된 연방인 F.A.I.를 조직했다. 이들은 개량주의적 관료제의 경향성을, 이후에는 공산주의적 경향성을 분쇄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의 궁극적 실수가 무엇이었건 간에, F.A.I.는 조직지향적 아나키즘의 예시로써 남았다.

레닌주의 정당

잘 알려진 것처럼, 정당이라는 개념은 레닌주의의 핵심이다. 정당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트로츠키주의(레닌주의의 한 분파)의 중심 문서는 트로츠키가 1938년에 저술한 “이행 강령”이다. “이행 강령”의 첫 문장(이자 근본)은 “세계정세 전반은 크게 프롤레타리아 지도부의 역사적 재앙으로 규정된다.”이다. 이는 핵심적 문제가 노동인민대중의 보수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당대의 노동자들과 억압된 인민들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났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회민주주의자들, 자유주의자들, 스탈린주의자들, 민족주의자들이 존경받고 확립된 지도자였기 때문인 것이다. 이 엘리트주의자들이 노동자들을 오래된 억압의 다른 버전으로 이끌었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지도부를, 혁명 계획에 헌신적인 지도부를 구성하여 노동자와 억압된 대중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혁명적 소수가 노동자들을 혁명의 실패의 원인으로 바라보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이 방식은 노동자 다수의 비 혁명적 의식수준이 문제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다수의 “후진성”을 한탄할 이유도, 노동자들을 낭만시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부패는 노동계급을 반란으로 계속 이끌어낼 것이다. 혁명적 소수의 임무는 이론과 분석, 전략, 전술, 그리고 집행을 담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지도부가 중요한 모든 것이라고 바라보는 오류를 범한다. 혁명의 주된 임무는 나쁜 지도자들을 좋은 지도자로 교체하고, 나쁜 정당을 좋은 정당으로 교체하는 것으로 국한된다. 인민을 선동하고 그들의 독립성과 자주성을 고무하는 대신에, 인민의 역할을 오직 올바른 지도부에게 권력을 주는 것으로 축소시킨다. 최악의 경우, 당이 노동계급을 대체하게 된다.

레닌주의자들은 그들의 당이 “민주집중제”로 운영되는 중앙집중적 조직이라 주장한다. 이것은 그들이 사회주의를 중앙집중화 된 국가가 경영하는 중앙집중화 된 경제로 이해하고 있다는 데에서 비롯한다. 이것을 달성하고, 달성한 후 중앙집중화 되고 국가화 된 경제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중앙집중화 된 당이 필요하다. 이론적으로 국가와 당은 (언젠가) “사라질 것”이지만, 경제는 전 세계적으로 중앙집중화 된 채로 남아있을 것이다. 참으로 관료주의적 악몽이 아닐 수 없다.

“중앙집중화”는 협동도, 단일화도, 협력도 아니다. (“민주적”이건 아니건) 중앙집중화라고 함은 모든 것의 원영이 중앙으로부터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소수가 모든 것을 이끄는 것이다. 폴 굿맨이 말하였듯, “중앙집중화된 조직에서 권위는 하향식이다. 정보는 아래로부터 모아져서 위에 있는 자들이 사용하도록 준비된다. 본부에서 모든 결정이 만들어진다. 정책, 일정, 표준 절차 등은 지휘체계에 따라 아래로 전달된다. 이러한 체계는 군기를 잡기 위해, 기록을 남기고, 세금을 모으고, 관료제를 기능하게 하고, 대량 생산을 하기 위하여 설계되었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 모델이고, 레닌주의 당은 이 모델을 지속한다. 결국 이러한 국가는, 특히 노동자-자본가 관계에 있어 자본주의 국가의 맹아라 할 수 있다.

분명히 아나키스트 연방 역시 일정 수준의 “중앙집중화”를 가지고 있다. 즉, 전체 구성원에 의해 특정한 임무를 부여받은 특정한 체와 개인들이 존재할 수 있다. 이 중앙 그룹은 선출되고 언제나 소환이 가능하다. 연방은 중앙집중화와 탈중앙화 사이의 균형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나키스트적으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만큼의 중앙집중화와 최대한도의 탈중앙화”를 의미한다.

레닌주의자들은 중앙집중화 된 당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한다. 당은 진리를 알고, “과학적 사회주의”를 알고 있다. 당은 프롤레타리아 정신의 체현으로 여겨진다. 프롤레타리아 정신은 프롤레타리아가 실제로 믿는 바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가 믿어야 하는 바이며, 오직 당만이 무엇을 믿어야 할지를 알고 있다. 그렇기에 당은 당 외부로부터 어떠한 것도 배울 것이 없다. 당의 지도부는 진리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당은 안정적인 중앙 지도력 아래에 집중되어야 한다. 당은 “깨우친 자의 짐을 진다.”6) 당은, 혹은 그 최고 지도부는, “전위”다.

나는 단어의 정의를 두고 옥신각신하고 싶지 않다. 그 단어의 의미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전위”라 칭한 아나키스트들도 존재한다. 그들은 이 단어를 그들이 정치적 사상의 첨단에 서있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그들은 새로운 사상의 최전선에 서있던 예술가들이 “아방가르드”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과 동일한 의미로 “전위”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하지만 “전위”는 스스로의 이념을 가진 혁명적 소수를 칭하는 뜻으로 사용되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전위”라는 단어는 이제 모든 답을 알고 있고, 그렇기에 다른 이들을 지도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자들을 칭하는 단어가 되었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은 이 개념을 거부한다.

이를테면 국제 볼셰비키 경향의 팸플릿은 초기 소련(레닌과 트로츠키가 집권하고 있던)에서 볼셰비키의 일당독재가 옳았다고 주장한다. 대다수의 노동자들(과 대부분의 농민들)이 더 이상 볼셰비키를 지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러하다고 한다. 만약 그들이 소비에트에 자유로운 투표권을 주었다면, 노동자와 농민들은 그들을 축출하고, 좌파 사회혁명당원들(대중주의자들), 멘셰비키들(개량적 사회주의자들), 혹은 아나키스트들을 선출했을 것이다. 그들은 이것이 자본주의에 굴복하고 원시 파시즘을 탄생시켰을 것이라 주장한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제쳐두고,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인민에게 최선인 것이 무엇인지 당은 알고 있다는 명분으로 소수 정당의 독재를 정당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사회주의가 아닌 스탈린주의를, 당을 통한 반反 혁명을 가져왔다. 스탈린주의는 나치즘만큼이나 끔찍한 전체주의 체제였다. 『국제 볼셰비키 경향』에 따르면, 볼셰비키는 1917년의 혁명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24년부터 이미 혁명적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최초 소비에트의 혁명적 민주주의에 천착하여 권력으로부터 축출되는 것이 볼셰비키들 스스로를 위해서도 더 나은 것이라 결론짓는다. 실제로 일어난 일들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볼셰비키 혁명이라는 허상

러시아 혁명이 중앙집중적이고, 하향적이며, 볼셰비키 유형의 전위당의 필요성을 증명하였다는 믿음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이러한 당이 없다면, 사회주의 혁명은 불가능하다고 이야기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러한 당을 건설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는 거의 신화에 가깝다.

레닌은 유럽으로 추방되어있는 도중 직업 활동가에 의한 중앙집중적 기구를 건설했다. 하지만 이 기구는 러시아 제국에서 실제 인민대중에 의해 이루어진 마르크스주의 운동을 통제하지 못했다. 러시아 제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차르의 탄압과 내부 분파주의(볼셰비키-멘셰비키 분열은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일 뿐이다)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다. 머레이 북친은 “볼셰비키 당은 혁명에 이르기까지의 대부분의 기간 동안 불법 조직이었다. 당은 꾸준히 분쇄되고 재건되었다. 볼셰비키가 권력을 쥐기 전까지, 그들은 온전히 중앙집중화되고, 관료화되며, 계층화된 기계가 된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내전까지 초래한 각 분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언급한다.7)

맑스-레닌주의의 권위자인 할 드레이퍼 역시 유사한 지점을 지적한다. “러시아에서 대중 정당의 초기 형태는 종파의 형태가 아닌 지역 노동자 모임의 형태로 만들어졌다. 이 지역 노동자 모임은 느슨하게 유지되었고, 느슨한 지역 연합을 결성했다. 러시아의 회원 조직은 볼셰비키와 멘셰비키 모두에 공감하고, 때때로 둘 사이를 오가던 지역 정당 그룹이었다. ‘전당대회’나 회의가 열릴 때마다, 이 정당 그룹은 어느 것에 참여할 지를 결정했다. 개별 당원들이나 당 그룹들은 레닌의 유인물을 나누어주거나 멘셰비키의 기관지 나누어주거나, 둘 다 나누어주지 않을지를 결정했다. 대다수는 트로츠키가 빈에서 구성한 것과 같은 ‘비분파적’ 기관지들을 선호했다. 그들은 자유분방하게 볼셰비키의 저작과 멘셰비키의 저작을 모두 인용해가며 그들의 유인물을 생산하고는 했다.8)

자본주의적 임시정부를 몰아내는 데 있어 볼셰비키들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는 알렉산더 라디노비치에 의해 연구된 바 있다. 볼셰비키 활동가들의 초기 회고록을 연구하고, 당시 볼셰비키의 기관지를 읽은 뒤 그는 “1917년 볼셰비키당의 단일체적 단결과 ‘철의 원칙’은 거의 허구”였다고 결론 내린다. 당의 중앙위원회는 다수의 지역 조직들을 통제하지 못했고, 많은 경우 그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페트로그라드와 모스크바라는 두 핵심 도시에서도 상대적으로 자치적인 볼셰비키 기구가 각각의 유인물과 각각의 정책으로 활동했다. 중앙위원회에서는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투쟁하는 강인한 투사들이 때때로 당규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한 와중에 당은 수만 명의 노동자 당원들의 가입을 받았고, 그들은 상당히 많은 것을 흔들어놓았다. 레닌이 러시아로 돌아온 이후, 그는 이 새로운 노동자 당원들에 의존하여 구 볼셰비키의 보수적 정책을 개변했다. 라디노비치는 이러한 “탈중앙적이고 규율없는” 분파들이 일부 문제가 되긴 했지만, 매우 중요했다고 결론 내린다. “볼셰비키의 조직적 유연함, 그들의 상대적 개방성과 책임감은 당의 세력의 중요한 원천이었으며, 결국 집권을 가능하게 하였다.”9)

중앙집중화 되고, 단일화 된 당의 건설은 혁명 이후 적백내전 과정에서야 이루어졌다. 1921년 내전이 끝나고 크론슈타트 수병의 반란을 진압하고, 노동계급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당 내 반대파를 숙청한 이후에야, 레닌은 볼셰비키(이 때 이미 공산당이라 개명한 이후였다)에서 당내 집단과 분파를 금지하자고 제안했다.(트로츠키도 이에 동의했다) “볼셰비키는 당을 중앙집중화를 그들이 노동계급으로부터 유리되는 단계까지 진행했다.”10) 1924년 스탈린이 집권한 이후 당은 그 어느 때보다 관료화되었고, 억압적이 되었다.

볼셰비키 당은 그들이 거의 아나키스트 연방의 형태였을 때 러시아 혁명을 이룩할 수 있었다! 중앙집중화 되고, 단일화 된 당은 혁명을 위한 당이 아니라 반反혁명을 위한 당이었다. 중국, 베트남, 유고슬라비아, 북조선의 권위주의적 레닌주의 당들은 스탈린의 소련 공산당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마오 등은 소련과 유사한, 국가자본주의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체제를 원했다.

러시아 혁명과 볼셰비키 당에 대한 또 다른 신화적 측면은, 볼셰비키들이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임시정부를 몰아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이 최초의 집권은 볼셰비키, 사회혁명당 좌파, 아나키스트의 연합 전선의 힘으로 이루어졌다. 다른 두 집단이 약점 때문에 볼셰비키들이 주요한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그들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 성공할 수 없었다. 사회혁명당 좌파들은 러시아 농민 대중주의의 적자들이었으며,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 강령을 가지고 있었다. 볼셰비키들과는 다르게 그들은 농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들의 약점은 그들이 사회혁명당의 우파들과 얽혀 있었다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주요 도시와 많은 산업 영역에서 활동했다. 불운하게도 아나키스트들은 여러 경향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정당들에 비해 조직력이 약했다.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들은 아나키즘적 코뮌주의자들보다 더 나은 조직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독자적 기관지를 출판했고, 그들의 관점을 대중에게 알려냈다.)

사회혁명당 좌파와 아나키스트들은 부르주아 임시정부를 축출하고 그 자리를 소비에트로 대체하는 데에 있어 볼셰비키들과 동의했다. 그들은 트로츠키가 이끈 군사 위원회에서 협력하였고, 그를 통하여 임시정부를 전복했다. 사회혁명당 좌파는 소비에트에서 볼셰비키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아나키스트들도 소비에트에 참여했고, 일반적으로 사회혁명당 좌파와 볼셰비키의 정책을 지지했다. 이 연합전선의 붕괴는 공산당 일당 독재를 향한 중요한 한 걸음이 되었다.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여기에 적기에는 어렵다.) 1921년, 공산당 내의 단체들을 불법화하면서, 레닌과 트로츠키는 다른 사회주의 정당들을 불법화할 것을 요구했다. 스탈린이 최종적으로 못 박은 것보다는 전단계이기는 하지만, 단일화된, 중앙집중화 된 일당 독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혁명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론

그 성취가 무엇이었든, 아나키즘은 반복적으로 자유로운 협동에 근거한 사회를 만드는 데 실패해 왔다. 아나키스트들에 의해 영향을 받은 혁명들은 패배하거나 국가주의자들에 의해 “계승되었다.” 이제 다시 세계적 규모의 아나키즘적 상승이 발생하고 있다. 많은 투사들이 말라테스타에 의해, 정강주의자들에 의해, F.A.I.에 의해, 에스페시피스타들에 의해 논의된 역사적 아나키즘의 조직지향적 · 계급투쟁적 경향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조직지향적 경향성이 자치주의적 마르크스주의라 경계하기도 한다. 우리는 노동계급과 억압받는 대중에 의한 세계 혁명을 향해 조직된 민주적 연방을 옹호한다. 반 조직적 아나키스트들은 이것이 레닌주의적 정당을 만드는 것이라 비난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건 간에, 현실에서 반 조직주의자들은 자본주의와 국가에 대항하는 효과적 아나키스트 조직을 부정한다. 반면, 레닌주의자들은 중앙집중화되고, 지도자와 대중이 분열된 국가 자본주의의 당을 재건하고자 한다. 그들은 러시아 혁명에 대한 거짓되고, 권위주의적인 프로파간다를 생산한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노동 계급과 억압된 이들의 해방은 그들 스스로의 임무라 믿는다. 우리는 혁명적 아나키스트 연방의 결성을 자본주의로부터 억압되고 착취된 이들의 자기 조직화의 일부라 바라본다. 인류의 해방에 자기 조직화는 여전히 핵심으로 남을 것이다.

1) 역자 주 - 에스페시피스무(especifismo, 구체주의)는 단결과 실천에 바탕을 둔 구체적인 아나키스트 조직을 건설하고, 그 조직을 통하여 전술과 조직을 이론화하며, 자치적이고 대중적인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정강주의적 아나키즘 운동의 경향성이다.

2) Skirda, 2002

3) 『국제 볼셰비키 경향』, 2002, p.1

4) <정강주의와 볼셰비즘>, 트로츠키주의 I.B.T, 2002,

5) 『선 긋기 : 팸플릿』, 폴 굿맨, 1962, 랜덤 하우스

6) 사이 랜디, (『스탈린주의의 흥망』, 월터 돔, 사회주의자의 목소리)의 전문에서,

7) 『탈빈곤사회의 아나키즘』, 2판, 머레이 북친, 블랙로즈

8) 「새로운 시작을 향해」, 리오리엔트 신문 3호, 할 드레이퍼

9) 『혁명의 서곡 : 페트로그라드의 볼셰비키와 1917년 7월 반란』, 알렉산더 라비노비치, 1991 인디아나 대학교

10) 북친, 위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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