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공산주의―아나키스트적 관점

좌파 공산주의

아나키스트적 관점

웨인 프라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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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mitted by dogej63 on April 2, 2023

아나키스트들은 간혹 사회민주주의도 아니고 마르크스-레닌주의도 아닌 마르크스주의의 소수 경향(혹은 경향들)에 관심을 가진다. 이 관점들은 “자유의지주의적 마르크스주의”, “자율적 마르크스주의”, “극좌파”, “자유의지주의적 공산주의”, 또는 “좌파 공산주의”라 불린다. 레닌은 그의 유명한 소책자 『좌파 공산주의, 유아적 혼란』을 통하여 이 관점을 반대한 바 있다.

이 관점은 1차 세계대전 전까지 사회민주당의 좌파세력으로 활동하고 있던 엥겔스와 크로포트킨 모두와 알고 있던 영국인, 윌리엄 모리스로부터 시작한다. 사회민주주의자들과 달리, 엥겔스와 크로포트킨은 제국주의적 전쟁에 반대했다. 그들은 러시아의 1917년 10월 혁명에 흥분했다. 그들은 레닌이 사회민주당으로부터 분열한 것에 영감을 받아 혁명적이고, 공산(코뮌)주의적인 당들을 건설하여 제3 인터내셔널에 가입한다.

공산(코뮌)주의 인터내셔널에서, 대부분의 혁명적 노동자들은 정치적으로 레닌과 트로츠키보다 좌측에 있었다. (이것이 계획의 측면에서 무슨 의미였는지는 후술하도록 하겠다.) 이것이 레닌이 그 소책자를 쓴 이유였다. 러시아 당 내에도 좌파 반대세력들이 존재했지만, 1921년에는 모두 금지되었다. 영국의 실비아 판크러스트처럼, 모든 곳에는 극좌 반대파들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독일-네덜란드의 좌파 공산주의자들과 이탈리아의 좌파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국제 공산주의 경향이 진행한 역사 연구를 보라.) 오늘날의 극좌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여전히 이 좌파 공산주의자들의 전통에 영향을 받고 있다.

독일-네덜란드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로자 룩셈부르크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물론, 로자가 좌파 공산주의의 모든 측면에 동의하지는 않았을 것이기는 하다.) 그들의 가장 잘 알려진 지도자는 안톤 판네쿡, 헤르만 고터, 오토 룰이다. 폴 매틱은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하여 IWW(Industrial Workers of the World, 세계산업노동자연맹)에서 활동했다. 칼 코쉬는 그들과 친하게 지냈다. 독일 공산당의 레닌주의적 지도부는 이 좌익 세력을 제명함으로써 제거했다.

이탈리아 좌익공산주의자들(“이탈리아 분파”)는 최초에 아마데오 보르디가가 선도했다. 그는 이탈리아 공산당의 창립자였으며, 그람시의 조직과 통합했다. 그는 이탈리아 공산당 당원 다수의 지지를 받아 1대 서기장이 되었다. 인터내셔널의 압박을 받아, 보르디가와 그 지지자들은 당에서 축출되었고, 당의 지도력은 그람시와 토글리아티에게 주어졌다. 보르디가는 파시스트 경찰의 감시 속에서 상당기간 정치로부터 멀어져야 했다. 하지만 보르디가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룹은 여전히 “보르디가주의자”라고 불리고 있다.

이 두 좌파 공산주의 경향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로부터 추방되었다. 그들은 레닌과 트로츠키(트로츠키주의자들이 인터내셔널과 당으로부터 추방된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보다 왼쪽에 있었다. 이 두 “극좌” 경향은 정치적으로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중대한 차이가 있었기에, 결코 합쳐지지는 않았다. 독일-네덜란드의 좌파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국가를 노동자 평의회에 의한 지배로 대체하고자 하였고(그렇기에 그들은 “평의회 공산주의자”라고 불렸다), 이탈리아 분파는 자본주의 국가가 그들의 당의 독재로 대체되는 것을 원했다.

후술할 글은 이 두 좌파 공산주의 그룹의 역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대신, 나는 좌파공산주의자들이 제기한 핵심 문제들 중 혁명적 아나키스트들이 (최소한 내가) 흥미를 가지는 것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개인에 따라 그 공통된 이상의 해석이 다를 것이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각이 변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각 경향 내부의 분열과 통합이 있었을 것이기에, 자연스럽게 많은 축약이 있을 것임을 먼저 밝히는 바이다.

좌파 공산주의자들의 문제 : 자본주의 부패의 시대

로자 룩셈부르크, 레닌, 트로츠키는 그들이 자본주의 시대의 최종 국면에 도달했다고, 이제 자본주의는 하강과 부패의 시대에 돌입하였다고 믿었다. 좌파공산주의자들은 이에 온전히 동의한다. 반등의 시기나 불평등한 성장의 영역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레닌은 제국주의가 식민지들의 산업 발전과 이들에 기생하는 제국주의 국가의 역산업화를 초래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자본주의는 쇠락할 것이고, 지속적인 불경기를 겪을 것이며, 주기적으로 경제공황을 맞이할 것이고, 반복적인 전쟁과 파괴가 뒤따를 것이고,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자유에 대한 정치적 공격이 계속될 것이다. (이들은 생태적 위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 관점은 혁명적 정치의 근간을 이루고, 정당화했다. 개량주의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다. 국제 노동계급 혁명은 인류를 지키기 위해 필요 불가결했다.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이것을 설명하는 다양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가지고 있었다. 일부는 자본주의는 비非 자본주의 국가를 착취하지 않고는 잉여가치를 실현할 수 없다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개념을 따랐다. 일부는 레닌과 부하린의 제국주의론을 따랐다. 폴 매틱은 비주류 스탈린주의자인 헨릭 그로스만의 영향을 받아 이윤율 저하에 집중했다. 총체적으로 그들은 혁명이 승리하지 않는다면 2차 세계대전이 올 것이라 판단했다. 그들은 세계대전 이후 현재의 부유한 기간이 이토록 길어질 것이라 판단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1945년, (보르디가는) 자본주의적 확장과 노동자의 개량주의의 시기가 길어질 것이라 예측했다. 이는 1975년부터 다가올 세계적 위기를 통해 끝을 맞이할 것이다.” 놀랍다. 몇몇은 2차 세계대전이 가져온 호경기를 살아서 보았고, 그에 관한 이론을 만들기도 했다.

그들이 자본주의의 쇠락 방식을 검토한 만큼, 그들은 자본주의는 자동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노동자 혁명은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 노동자들이 계급의식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깨어나는 것은 반드시 필요했다.

자본주의 부패의 시대에 대한 관점은 독점의 성장과 국가와 자본의 유착을 포함한다. 이것을 인지하는 것은 소련을 “노동자 국가”가 아니라 국가 자본주의라 이해하게 하였다. (이 지점에서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옳았고, 이 지점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과 대립하였다.)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국가 자본주의와 러시아 혁명의 본질에 대한 다양한 이론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보르디가는 소비에트 러시아는 국가 자본주의가 아니었고, 자본주의의 발전 도상에 있는 사회였다는 독특한 이론을 제시했다.

선거

1차 인터내셔널에서 마르크스와 아나키스트들의 핵심적인 집행상의 차이점은 노동자 계급 정당의 건설과 선거 복무 전략에 관한 것이었다. 마르크스는 많은 경우 혁명적 반란이 필요하겠지만,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정당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나키스트들은 선거 전략을 총체적으로 거부했고, 자주적 대중행동을 옹호했다.

레닌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에 가맹한 당들이 의회에서의 선거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인터내셔널 가맹을 위한 21개의 조건 중 하나였다. 물론 레닌이 선거를 통한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권력 확보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레닌은 선거가 선전과 영향력 확보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선거주의를 반대했다. (독일-네덜란드의 평의회주의자들은 원칙적으로, 이탈리아 분파는 보다 전술적으로) 그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사기이며, 부르주아 독재의 형태라 주장했다. 선거주의는 노동자들을 현혹했고, 노동자들에게 혁명가들조차 의회를 신뢰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던져왔다. 선거주의는 노동자들이 그들을 “대변”할 누군가에게 표를 던질 때는 정치적이지만, 곧바로 일터로 돌아가는 수동성을 낳았다. 선출된 사회주의자들은, 아무리 급진적으로 시작했더라도, 의원으로 살아가면서 부패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급진적 당들을 부패시켰고, 당이 당선을 위해 강령을 노동자들의 현시적이고 개량적인 의식수준으로 수정하게끔 하였다. 선거에 출마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계획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것들은 역사가 마르크스주의 사회민주당들을 통해 가르쳐 준 것들이다.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시대가 어떠했건 간에, 선거에 출마하고 의회에 복무하는 것은 더 이상 유호한 방법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아나키스트의 위치 근방에 도달했다.

노동조합

여기에서 좌파 공산주의의 두 경향성이 분화된다. 독일-네덜란드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기성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들은 노동조합을 파괴해야 할 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개량주의자들의 노동조합이 그 조합원들을 1차 세계대전의 제국주의로 내몰았던 것을 떠올리고, 그들이 독일 혁명을 방해했던 것을 떠올린다. 그들은 노동조합이 부르주아의 노동자 통제기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이들은 새로운 혁명적 조합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노동조합을 총체적으로 부정하고 노동자 평의회가 다가올 혁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보르디가주의”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관료적이고 개량주의적인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것을 지지하고, 그 구성원들이 노동조합 운동에 참여할 것을 촉구한다. 이를테면 “공산주의자들은 오늘날 대중이 유일하게 단결된 조직인 개량적 노동조합 안에서의 투쟁을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활동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 활동은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방어기제이자, 공산주의자들이 조합을 통해 합법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기제이기 때문이다.” (『국제 좌파 공산주의자 벨기에 분파의 원칙 선언, 국제 공산주의 경향』, 1992, p.182)

부르주아와의 전투를 위해서는 아직 개량주의자들에게 환상을 가지고 있는 다수 노동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혁명가들이 노동조합에서 철수함으로써 노동자들로부터 즉각적으로 자기격리를 하는 대신에 (개량주의자들은 이 결정을 반길 것이다) 혁명가들은 노동조합 안에서 비타협적인 공산주의 강령을 키우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개량적 오도에 맞서 투쟁하여야 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평의회주의자들보다 “보르디가주의자”들에 더 공감한다. 노동조합에 참여하는 것은 의회에 출마하는 것과는 다르다. 의회는 국가의 기능인 반면, 노동조합은 아무리 왜곡되었다 해도 노동계급의 기구다. 노동자들(만)의 조직인 노동조합과 노동자 조직 내에서 부르주아의 집행위원회 역할을 하는 관료기구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하지만 최악의 관료라 할지라도 조합원들의 지지를 획득하고, 그로써 자본가 계급과 국가에 팔아먹을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을 위해 무언가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미국에서 조직된 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미조직노동자들보다 고임금을 받는 이유가 되겠다. (하지만 노조관료들이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할 때, 진정한 재앙이 다가온다.)

역사는 답을 가지고 있다. 만약 노동조합이 자본가의 대리인에 지나지 않았다면, 자본가들은 노동조합을 지키고, 노동자를 통제하는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대신에 경제가 악화될 때 자본가들은 “가장 온건한” 노동조합에 대해서도 끔찍한 계급적 전쟁을 선포하곤 했다. 미국에서는 우선 민간부문 노동조합의 조직률이 무너졌고 (전체 노동력의 1/3에서 7%까지), 그리고 공공부문 노동조합들이 공격을 받았다. 자본가들이 노동조합을 견딜 수 있다고 판단했을 때, 그들이 노동조합을 최대한 이용한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제 자본가들이 노동조합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너무 대변한다고 판단하자, 이렇게 된 것이다. 당연하게도 자유주의 관료들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 전혀 알지 못한다!

민족해방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거의 모든 의제를 노동계급과 착취에 대한 경제적 투쟁에 집중한다. 그들은 비 계급적 문제와 억압, 이를테면 젠더나 인종에 대해서는 크게 언급하지 않는다. (전쟁은 예외로 두자. 전쟁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 단지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일반적 부르주아 독재 사이의 공통점을 드러내는 데에 집중한다. 그들은 다른 억압된 부문으로부터 노동계급의 동맹을 찾으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국가와 지배계급으로 향할 수 있다 하더라도 비 계급적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가장 큰 예시는 그들이 민족해방(자주) 투쟁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민족해방투쟁이 필연적으로 부르주아적이고, 국가주의적이며, 제국주의의 기저라 주장한다. 그들은 로자 룩셈부르크를 따라 민족 투쟁은 현대의,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쇠락시기에는 승리할 수 없다고 본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사실이 아니다. 그 이후로도 많은 민족들이 식민지 주인들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쟁취했다. 푸에르토 리코, 팔레스타인, 티벳 등이 민족 독립을 얻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절대적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세계 정치의 강대국 지배 체계 와 제국주의적 기업(다국적기업)에 의한 세계시장 지배 하에서 완전한 민족적 자유를 얻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은 자유의지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이 “민족주의”를 새로운 자본주의 민족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발상이 불가능하다는 논지를 강화할 뿐이다. 강령과 이데올로기로써의 “민족주의”는 민족해방과 같은 것이 아니다. 노동계급에 의한 국제 혁명의 강령과 그 동맹자들만이 온전한 민족자주를 쟁취할 수 있다. 이것이 혁명가들이 민족주의 투쟁을 지지해야할 이유이며, 억압된 인민들과의 연대를 보이는 동시에 그들의 민족주의적이고, 자본주의 지향적이며, 국가주의적인 그릇된 지도자들에 저항해야할 이유이다. (민족 해방과 반제국주의 투쟁에 아나키스트들이 참여해온 역사를 보고 싶다면, 『검은 불꽃』(슈미트 & 반 데르 발트, 2009)을 참조하라)

독특하게도 네덜란드의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강령에도 불구하고 네덜란드의 식민주의에 대항한 인도네시아 민족 투쟁을 지지했다. 그들은 옳았다.

통일 전선과 대중 전선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원칙적으로 다른 노동계급의 정치경향, 특히 사민주의자들과 함께 투쟁하는 것에 반대한다. 사민주의자들은 이탈리아, 독일, 러시아에서 혁명을 배반해왔고, 그렇기에 그들은 결국 자본계급의 집행위원회에 지나지 않는다. “극좌파”들은 공산주의 혁명을 대변하지 않는 노동자 계급정당과의 통일전선을 거부해왔다. 이것은 결국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하며 사회민주당을 지지한 수백만 유럽 노동자들의 현실을 무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이러한 비공산주의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할지를 고민했어야 한다.

동시에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모든 지지를 거부하였고, 그것이 파시즘만큼 악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노동조합, 정당, 노동자 연론, 나아가 좌파 공산주의 조직의 존재를 용인한다는 현실을 무시한다. 파시스트들은 이것들을 모두 파괴할 것이고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노동계급을 진탕 속에 처박을 것이다. 사민주의자들은 파시스트들과 마찬가지로 혁명에 반대한다. 하지만 사민주의자들은 파시스트들과는 다르게 존재하기 위해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 노동자 조직의 존재가 노동자 민주주의의 기간이 된다.

이것이 어떻게 실현되는가? 1920년대 초반의 이탈리아에서, 대기업의 도움을 받은 무솔리니는 파시스트 세력을 조직했다. 전직 군 관료, 깡패, 폭력배들에게 파시스트 제복이 주어졌고, 그들은 도시, 마을, 촌락에서 노동조합 사무실, 사회당/공산당 본부, 좌익 언론사를 파괴했다. 최초에 이것은 저항이 없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전직 사병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인민의 자경단(아르디티 델 포폴로, Arditi del Popolo)을 구성했다. 그들은 아나키스트,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자,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 좌파 공화주의자(반 왕당파) 등 광범위한 좌파 노동자들을 포괄했다. 그들은 노동조합 본부와 “적색” 촌락을 수호하고 파시스트들을 거리와 마을에서 추방하는데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사회당은 파시스트들과 “평화협정”(파시스트들은 이 협정을 즉각적으로 파기했다)을 체결하기로 결정했고, 당원들을 철수시켰다. 그리고 보르디가가 이끌던 공산당 역시 아르디티에서 그 당원들을 철수시켰다. (이로써 그들은 사민주의자들을 압박할 기회를 놓친다.) 그들은 철수의 이유로 노동자들이 공산당이 아닌 자의 지도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아르디티가 “민주주의”를 추구할 뿐 공산주의 혁명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들었다. 아나키스트와 조합주의자, 그리고 공화주의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아르디티에 남지 않았다. 남은 이들은 파시스트와의 투쟁을 최선을 다해 계속했지만, 결국 패배했다. 그리고 노동계급 또한 그러했다.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은 집권과 동시에 파시즘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좌파 공산주의적 시도가 초래한 것이 이와 같았다.

만약 그들이 유의미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독일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나치즘에 대하여 동일한 재앙을 반복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동일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었다. 독일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나치에 대항하는 사회민주주의자들과의 통일전선을 거부했고, 나치 정권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나쁠 것이 없을 것이라 고집했다. 그 대신 스탈린과 그 집행부의 통제 하에 있던 독일 공산당이 “극좌” 강령을 실행했다. 보르디가가 그러했던 것처럼, 그들은 사회민주당과의 어떠한 동맹도 거부했다. 그들은 의회 민주주의와 나치 독재를 구분하기를 거부했다.

독일 아나키스트들은 혁명적 이성을 대변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소련으로부터 추방당한 상태였던 트로츠키는 소책자들을 펴내 공산주의자들이 사회민주주의자들과 통일전선을 펼 것을 촉구했다. 그는 실질적인 군대와 노동계급의 동맹을 통해, 파시스트들이 그러하기 전에 그들과 투쟁하고, 그들의 모임을 분쇄하고, 그들을 거리에서 내쫓을 것을 촉구했다. 그는 비난받고 무시당했다. (트로츠키에 대한 광범위한 평가는 제쳐두도록 하자.) 다시 한 번 좌파 공산주의자들의 전략은 노동계급과 세계에 끔찍한 결과를 불러왔다.

독일에서 나치가 승리한 이후, 스탈린주의자들은 그 결과에 충격 받았다. 그들은 종파주의적인 “극좌”에서 벗어나 즉시 노동자 조직의 통일전선을 뛰어넘는 “인민전선”으로 우경화했다. 이는 노동자 조직과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당까지 포괄한 동맹을 의미했다. (이를 통해 동맹이 자본주의의 한계 안에 머물 것임이 분명해진다.) 대부분의 좌파들은 이것을 수인했다. 심지어 조합주의적 노동조합 연방을 이끌고 있던 스페인 아나키스트의 주류마저도 프랑코의 파시즘에 맞서는 인민전선에 참여했다. 이렇게 그들은 그들의 강령과 노동계급을 배신했다.

통일전선을 지지하지 않았던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인민전선 또한 지지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그들은 옳았다. 하지만 좌파공산주의자들의 경직된 강령과 종파적 순수성에 대한 집착은 원칙의 공고함을 전술적 유연성과 동시에 가져갈 수 없게 만들었다. 스페인 혁명에서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파시스트와 공화주의자들을 동등하게 반대했고, 양측 모두의 군인들에게 탈영을 촉구했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인민전선 정부를 몰아낼 수 있을 만큼 강해지기 전까지는, 공화주의자들과 함께 싸울 이유를 찾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좌파공산주의자들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도, 이탈리아의 빨치산에도 반대했다. 그들은 이 투쟁들이 동맹군의 제국주의를 강화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러한 세력들이 혁명을 선도할 수 없다고 믿었다.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전후에 극도로 고립되었다.

민주주의, 정당, 국가

“보르디가주의자”들과 평의회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목적에 대한 해석에 관한 것이었다. “두 좌파들을 가장 구별 지었던 것은, 한 쪽은 당의 독재를 대변하고, 한 쪽은 평의회의 독재를 대변한다는 것이다.”

보르디가는 언제나 스스로가 레닌주의자라 주장했고, 레닌보다 레닌주의적이라 비판받았다. 평의회 공산주의자들과 달리, “그는 스스로를 ‘반민주적’이라 자랑스럽게 정의했다. 그는 러시아와 독일, 이탈리아에서 로비에트와 노동자 평의회가 하는 역할을 놓쳤고, 이를 해산했다. 보르디가는 소비에트, 노동자 평의회, 노동자 민주주의의 역사적 중요성을 망각했고, 당에 모든 권한을 부여했다.”1)

1951년, 보르디가는 그의 관점을 종합했다. 당은 노동자 계급 의식을 대변한다. (일부 보르디가주의자들은 당이 없이는 노동계급은 계급으로 존재하지 못한다고 선언했다.) “단결하고 일차원적인 당”이 구성되어야 하고, 그 목적은 정권을 탈취하고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 한번 권력을 잡는다면, 당은 선거를 통해 “통계적 다수”를 확보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당은 “계급 민주주의”나 “노동자 민주주의”에 의존하거나 “표가 부족하다고 퇴진하지” 않을 것이다. “공산당은 홀로 통치하고, 물리적 투쟁 없이는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경제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 데이터와 과학적 연구”에 집중하는 전문가를 통해 조직될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자유를 향한 위선적 외침 대신에 혁명적이고 전체주의적인 세력과 권력을 가진 계층“이 있을 것이었다. 보르디가는 이론과 실천에 있어 다소간의 기여를 했을지 모르지만, 전반적으로 그의 정치는 끔찍하다. 현실적으로, 그는 국가 자본주의를 대변한다.

독일-네덜란드의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 민주주의라는 핵심적 문제에서 이들과 차이점을 보였다. 이 문제가 그들과 레닌의 첫 대립에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좌파 공산주의자들이 당을 반대하고 노동자 평의회의 통치를 지지하면서 곧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이 때부터, 역사는 혁명적 상황이 주어질 때, 관료적 자본주의 국가의 대안으로써 노동자들과 대중의 평의회가 만들어지는 예시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다.

보르디가 및 다른 이들은 노동자 민주주의의 목표를 가치 법칙에 따르는 사회를 목표로 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가치법칙은 공유재가 시장에서 교환되는 혼란스러운 사회를 상징한다. 이러한 혼란상은 자유롭게 연합한 생산자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경제를 조직하고 계획하기 전에는 철폐될 수 없다. 이것은 완전한 노동자 자주경영을 필요로 하고, 노동자 자주경영은 노동자 민주주의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평의회주의자들은 혁명적 소수자(당으로 조직되었건 아니건)와 노동자 평의회 사이의 관계의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들은 당이 부르주아 의회를 통해 권력을 잡는다는 개념을 폐기한 바 있다. 그들은 결국 당이 평의회를 사용하여 권력을 잡는다는 개념마저 폐기하기에 이르렀다. 일부는 여전히 당이나 혁명적 소수의 조직 같은 것이 다양한 개량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세력에 대항하여 투쟁할 필요성을 보고 있다. 반면 다른 이들은 당이나 조직은 존재할 필요가 없으며, 이러한 구조는 결국 당-국가를 만들 것임을 주장한다. 오토 룰이 이러한 관점에 영향을 받았다. 총체적으로 평의회 공산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다룸에 있어 혼란스러운 장광설만을 이야기할 뿐이다.

많은 아나키스트들이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 내가 스스로를 정체하고 있는 아나키스트 경향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조직으로써의 당을 거부하지만, 일반강령에 동의하는 혁명가들이 그 이상을 퍼뜨리기 위한 수단으로써 스스로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도 믿는다. 조직은 활동을 모아내고, 사상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당-국가나 개량주의를 대변하는 경향성에 반대하는 것을 돕기 때문이다.

결론

아나키스트로서, 내가 좋아하는 좌파 공산주의의 측면은 그들이 마르크스의 경제이론과 마르크스 사상의 다른 측면들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아나키즘과 유사한 강령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최소한 평의회주의자들의 경우에는 그렇다.) 나는 마르크스의 사상이 상당히 유용하다고 여기고, 좌파공산주의를 그 사상 중 일부가 아나키즘과 함께할 수 있다는 증거로 여긴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좌파 공산주의는 큰 오류를 가지고 있으며, 결국 거부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좌파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 부패의 시대에 혁명적 강령을 근거하고 있다는 것은 옳았다. 그리고 그들이 소련을 국가자본주의적이라 바라본 것 역시 옳았다. 전술적으로, 그들은 선거주의를 반대하고 대중 파업과 직접행동을 추구한 것에서 옳았다.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인민전선과 자유주의 부르주아 정당과의 동맹을 반대한다는 부분에서 옳았다. “보르디가주의자”들은 개량적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것에 대한 부분에서 옳았다. 평의회 공산주의자들은 혁명적 시기에 노동자 평의회를 발전시켜 부르주아 국가를 평의회에 의한 통치로 대체해야 한다는 접근에 있어 옳았다.

반면,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경직되어있었고, 이데올로기에 눈이 멀어있었다. 그들은 노동계급이 동맹을 건설하고 모든 형태의 억압에 맞선 인민의 투쟁을 만들 방법을 찾지 않았다. 평의회주의자들은 개량적 노동조합에서 일하는 것을 거부했다. 모든 분파의 좌파공산주의자들은 민족해방 투쟁과 통일 전선을 거부하였다는 지점에서 잘못되었다. 그들의 종파주의적 전술은 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에 대항하는 투쟁을 막아섰고, 독일에서 나치에 대항하는 투쟁을 막아서면서 세계 노동 계급에게 재앙으로 다가왔다. 권위주의적이고, 국가자본주의적인 보르디가의 정치는 결코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의 그것이 될 수 없다. 한편 평의회주의자들은 그들이 혁명적 소수의 조직을 구성하여 그 강령을 위해 투쟁하는 것에 대하여 흔들려왔다. 그리고 이것은 그들의 유효성을 크게 약화시켰다. 아나키스트들은 좌파 공산주의자들로부터 학습할 것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좌파 공산주의자 되어서는 안 된다.

1) 『유물론적 인간 공동체에서의 공산주의 : 오늘날의 아마데오 보르디가』, 로렌 골드너. 골드너는 보르디가의 반 민주주의적 관점에 동의하지 않지만, 여전히 보르디가를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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