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의 조직적 강령
「디엘로 트루다(노동자의 조직)」지誌에 네스토르 마흐노, 아이다 멧, 표트르 아르시노프, 발레프스키, 린스키가 기고함
「디엘로 트루다(노동자의 조직)」지誌에 네스토르 마흐노, 아이다 멧, 표트르 아르시노프, 발레프스키, 린스키가 기고함
1926년, 추방된 러시아 아나키스트의 그룹인 《디엘로 트루다(Dielo Trouda, 노동자의 조직)》가 프랑스에서 이 소책자를 출판했다. 이것은 학술적 연구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1917년의 러시아혁명에서 경험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들은 옛 지배계급을 몰아내는 데 역할을 하였고, 노동자와 농민의 자주적 경영을 꽃피우는 데 역할을 하였으며, 사회주의와 자유의 신세계에 대한 낙관을 공유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이 국가자본주의와 볼셰비키 일당독재의 유혈로 대체되는 것을 목격하였다.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운동은 혁명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당시 러시아에는 약 1만 명의 아나키스트 활동가가 있었다. 그리고 이 1만 명에는 우크라이나에서 네스토르 마흐노가 선도하던 운동은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10월의 볼셰비키 집권을 만들어내었던 혁명군사위원회에는 최소한 4명의 아나키스트가 포함되어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2월 혁명 이후 아나키스트들은 공장위원회에 참여하였다는 데에 있다. 공장위원회는 현장에 근거하고 있었고, 노동자 대중의 총회에 의하여 선출되어 공장을 경영하고, 다른 현장과 협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아나키스트들은 광부, 항만노동자, 우정郵政노동자, 제빵노동자들 사이에서 특히 영향력이 강했고, 혁명 전야 페트로그라드에서 개최된 범凡 러시아 공장위원회 총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나키스트들은 이 위원회들을 혁명 이후에 자리 잡을 노동자의 자주경영의 근간이 되리라고 바라보았다.
하지만 1917년 10월의 혁명적 정신과 단결은 오래 가지 않았다. 볼셰비키들은 그들이 생각하기에 그들의 “일당一黨” 권력에 방해가 된다고 바라본 좌파 세력들을 탄압했다. 아나키스트들과 일부 좌파들은 노동계급은 자체적 위원회와 소비에트를 통해 힘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볼셰비키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노동자들은 아직 스스로의 운명을 통제할 수 없기에 볼셰비키들이 “이행기”의 “이행 수단”으로서 집권해야 한다는 전제를 내세웠다. 평범한 인민들의 자신감 결여와 권위주의적 집권은 결국 노동계급의 이득과 희망, 그리고 꿈에 대한 배신으로 나타났다.
1918년 4월, 모스크바의 아나키스트 센터들이 공격받았다. 600명의 아나키스트들이 수감되었고, 십여 명이 살해당했다. 그 명분은 아나키스트들이 “통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의미한 것이 무엇이었건 간에,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단순하게 아나키스트들이 볼셰비키 지도자들에게 복종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었다. 실질적인 이유는 그들이 흑위대the Black Guards를 결성하여 셰카(KGB의 선조들)의 잔혹한 도발과 폭력에 맞서 싸우려 했다는 것이었다.
아나키스트들은 어느 편에 설지를 결정해야 했다. 한 분파는 볼셰비키와 함께 하기로 했는데, 효율성에 대한 고려와 반동에 대항한 단결을 위해 볼셰비키에 합류했다. 다른 분파는 혁명의 성과를 그들이 새로운 지배계급이라 본 이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 우크라이나의 마흐노주의 운동과 크론슈타트 봉기는 최후의 중요한 전투들이었다. 1921년에는 반反권위주의적 혁명은 소멸했다. 이 패배는 국제 노동자 운동에 깊고 오래 가는 후유증을 남겼다.
저자들은 이러한 재앙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이에 기여하기 위해 그들은 『강령』이라 불리는 문건을 작성했다. 이 문건은 러시아 아나키스트 운동이 현존하는 노동자 계급운동 안에서 볼셰비키 및 여타 정치집단에 대항하기 위한 충분히 거대하고 유효한 존재감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서 교훈을 삼는다. 이 문건은 아나키스트들이 어떻게 조직하여야 하고, 어떻게 효과적인 조직이 될 것인가에 대한 거친 이정표를 제공한다.
『강령』은 아나키즘에 반대하고 모순되는 형태의 그룹을 포함한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우스꽝스럽다는 단순한 진리를 천명한다. 『강령』은 우리가 명시적 정책, 관료의 역할, 회비의 징수 등을 담당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합의된 구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러한 구조는 더 크고 효과적인 민주적 조직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강령』이 최초에 출간되었을 때, 이 문건은 에리코 말라테스타(Errico Malatesta)나 알렉산더 버크만(Alexander Berkman) 같은 당대의 유명한 아나키스트들로부터 공격받았다. 그들은 『강령』이 “볼셰비즘으로부터 단 한 발짝 멀”며, “아나키즘을 볼셰비키화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반응은 과장된 것이었지만, 아마도 『강령』이 아나키스트 총동맹을 제안했다는 데에 근거하고 있었을 것이다. 저자들은 이 조직과 그 외부의 아나키스트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명확하게 적시하지 않았다. 『강령』은 독립된 아나키스트 조직들이 공통된 전망과 전략으로 바라보는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에 어떠한 문제도 있을 것이라 바라보지 않았다.
『강령』의 반대자와 이후의 지지자들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아나키즘을 떠나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로 향하는 계획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 단어는 완전히 동질적이다. 이 문건은 러시아 아나키스트들이 이론적 혼란을 극복하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이로 인해 전국적 협동의 부족과, 비非조직화와 정치적 불확실성을 촉발하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면 무효했다는 것이 되겠다. 『강령』은 아나키스트 운동 안에서 토론을 촉발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문건은 권위주의적 정치와의 타협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아나키즘적 원칙을 가진 효과적인 혁명 행동을 구성하는 조직을 만들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오늘날, 『강령』은 결코 완벽한 계획이라 볼 수 없다. 1926년에도 『강령』은 완벽하지 않았다. 이 문건은 그 사상의 일부분을 충분히 깊이 설명하지 않았다. 『강령』은 중요한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강령』이 작은 소책자일 뿐, 26권짜리 백과사전이 아님을 기억하라. 저자들은 서문에서 이 문건이 “성서”같은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강령』은 분석이나 계획을 완성한 것이 아니다. 『강령』은 필요불가결한 토론을 위한 발제문일 뿐이다. 그리고, 상당히 훌륭한 기조발제문이다.
오늘날 누구도 이 문건의 의의를 잊지 않게 하도록, 『강령』의 기본적 이상은 여전히 국제 아나키즘 운동의 주류보다 앞서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자 한다. 세계를 더 낫게 변혁하고 싶은 아나키스트에게 이 소책자는 방향성과 도구를 보여줄 것이다.
앨런 맥시몽, 1989
네스토르 마흐노(Nester Makhno)와 표트르 아르시노프(Piotr Arshinov)는 파리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망명한 아나키스트들과 함께 1925년, 훌륭한 격월간지 「디엘로 트루다Dielo Trouda」를 출간했다. 「디엘로 트루다」는 아나키즘적 코뮌주의 이론에 근간한 질 높은 비평지였다. 수년 전에 이들이 모스크바의 뷰티르키Butirky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때, 그들은 이 평론지에 대한 생각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이제야 그것을 실현시켰다. 마흐노는 3년간 발생한 모든 문제에 대한 기사를 썼다. 1926년에 이 그룹에는 그 직전에 러시아에서 탈출한 아이다 멧(Ida Mett, 볼셰비즘에 대해 폭로한 『크론슈타트 코뮌The Kronstadt Commune』의 저자)가 합류했다. 그 해에 그들은 『조직적 강령』을 출판했다.
『강령』이 출판되자, 그 문건은 국제 아나키스트 운동의 분노와 매도를 맞이해야 했다. 이것을 가장 먼저 공격한 것은 러시아 아나키스트인 볼린[Voline, 당시 역시 프랑스에 있었고, 세바스티앙 포레(Sebastian Faure)와 ‘통합Synthesis’을 공동으로 창시하여 아나키즘적 코뮌주의, 아나키즘적 조합주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을 통합하고자 하고 있었다)이었다. 몰리 스타이머(Molly Steimer), 플레신(Fleshin) 등도 『강령』에 반발하여 “아나키즘을 계급의 이론으로 남기기 위해서는 아나키즘을 단일한 관점으로 제약할 필요가 있다”고 언명하는 답문을 작성했다.
이에 굴하지 않고, 「디엘로 트루다」는 1927년 2월 5일, ‘국제 총회’에의 초대장을 발송했고, 같은 달 12일 사전 회의를 개최했다. 사전회의에는 「디엘로 트루다」 외에도 프랑스 청년 아나키스트의 대변인인 오데온(Odeon), 불가리아인 파벨(Pavel), 폴란드 아나키스트 그룹의 란코(Ranko), 오로본 페르난데스(Orobon Fernandez), 카르보(Carbo), 히바넬(Gibanel) 등의 스페인 투사들, 이탈리아인 우고 페델리(Ugo Fedeli), 중국인 첸(Chen), 프랑스인 도플랭-뮈니에르(Dauphlin-Meunier)가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다. 첫 회의는 파리의 한 카페의 작은 뒷방에서 개최되었다.
임시 회의체가 준비되었다. 이 회의체는 마흐노, 첸, 란코로 구성되었다. 2월 22일에는 모든 아나키스트 그룹들에 회람이 발송되었다. 국제 총회는 1927년 4월 20일, 파리 근교 라이레로즈L'hay-les-roses의 레로즈Les Roses 극장에서 열렸다.
첫 번째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뿐 아니라, 이탈리아의 비폴치(Bifolchi), 「펜시에로 이 볼론타Pensiero e Volonta」지를 대표하는 루이지 파브리(Luigi Fabbri)와 카밀로 베르네리(Camillo Berneri)와 우고 페델리(Ugo Fedeli)가 『강령』을 지지했다. 프랑스의 두 대표자인 오데온(Odeon)과 세베린 페란델(Severin Ferandel) 역시 『강령』을 지지했다.
이곳에서는 다음 사항들이 제안되었다.
1. 계급투쟁이 아나키스트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임을 인식한다.
2. 아나키즘적 코뮌주의가 운동의 근간임을 인식한다.
3. 조합주의가 투쟁의 주된 방법론이어야 함을 인식한다.
4. 이데올로기적, 전술적 단결과 집단적 책임에 근거한 ‘아나키스트 총동맹’이 필요함을 인식한다.
5. 사회혁명을 실현하기 위한 긍정적 계획이 필요함을 인식한다.
오랜 토론 끝에 최초의 제안에 일부 수정이 가해졌다. 하지만 경찰이 회의장에 나타나 모든 참가자를 체포하면서 어떠한 것도 완성되지 못했다. 마흐노는 추방될 위기에 처했고, 프랑스 아나키스트들의 투쟁이 이를 겨우 막았다. 하지만 ‘혁명적 아나키즘적 코뮌주의자 국제 연맹’을 위한 제안은 좌절되었고, 총회에 참가한 이들 중 일부는 이것을 더 주장하기를 포기했다.
『강령』을 향한 다른 공격은 파브리, 베르네리, 아나키스트 역사학자인 막스 네틀라우(Max Nettlau), 그리고 유명한 이탈리아 아나키스트 말라테스타에 의해 이루어졌다. 「디엘로 트루다」는 이 공격에 대해 『아나키즘의 혼란주의자에게 답함A Reply to the Confusionists of Anarchism』과 1929년 아르시노프가 저술한 『강령』에 대한 선언으로 대응했다. 아르시노프는 『강령』에 대한 반응에 실망했고, 1933년 소련으로 돌아갔다. 그는 스탈린(Stalin)의 대숙청 중에 ‘러시아에서 아나키즘을 복구하려고 시도’하였다는 죄목으로 고발되었고 1937년 처형되었다.
『강령』은 국제적으로 확고한 지위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강령』은 일부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에서는 분열과 융합의 끝에 『강령』을 따르는 “강령주의자”들이 간헐적으로 주요 아나키스트 조직을 통제하곤 했지만, 그렇지 못할 때 그들은 조직에서 밀려나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야 했다. 이탈리아에서 『강령』의 지지자들은 작은 ‘이탈리아 아나키즘적 코뮌주의 연합Unione Anarco Comunista Italiana’을 건설했지만 곧 붕괴했다. 불가리아에서는 조직을 두고 벌어진 논쟁 끝에 불가리아 아나키즘적 코뮌주의 연방F.A.C.B.이 “공고한 강령” 위에, “영구하고 조직적인 아나키스트 조직을 위해”,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의 원칙과 전술로 건설”되었다. 하지만 강경한 “강령주의자”들은 이 조직을 인정하기를 거부했고, 그들의 주간지 「프루포당Prouboujdane」을 통해 그들을 비난했다. 이 조직 역시 곧 붕괴했다.
폴란드에서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폴란드 아나키스트 연방Anarchist Federation of Poland(AFP)은 계급투쟁과 사회혁명을 통해 자본주의와 국가를 몰아내고, 노동자와 농민의 평의회 및 이론적 단결을 근간으로 한 조직으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은 『강령』이 권위주의적인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며 이를 거부했다. 스페인에서는 후안 고메스 카사스(Juan Gomez Casas)가 『아나키스트 조직―F.A.I.의 역사Anarchist Organisation — The History of the F.A.I.』에서 말한 것처럼 “스페인의 아나키즘은 인터내셔널이 처음으로 스페인에 도달한 날부터 어떻게 영향력을 확보하고 강화할지를 고민했다.” 스페인 아나키스트들은 당시에 고립에서 탈출하는 것이나 볼셰비키와 경쟁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다. 스페인에서는 여전히 볼셰비키의 영향력이 작았다. 『강령』은 스페인 운동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했다. 아나키스트 조직인 “이베리아 아나키스트 연방Federacion Anarquista Iberica(F.A.I.)”이 1927년 건설되었을 때, 『강령』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기에 논의되지 못했지만, 의제에는 포함되었다. 당시 프랑스의 스페인어 사용 아나키스트 그룹의 서기였던 후안 마누엘 몰리나스(J. Manuel Molinas)는 이후 카사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아르시노프와 다른 러시아 아나키스트들의 『강령』은 추방자들의 운동이나 국내의 운동에 아주 작은 영향만을 주었다. 『강령』은 러시아혁명의 빛 속에서 국제 아나키스트 운동의 성격과 역량을 키워내고, 새롭게 하고자 하는 시도였다. 오늘날, 우리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나는 『강령』은 온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적었다.
세계대전은 아나키스트 조직의 발전을 방해했다. 하지만 『강령』을 둘러싼 논란은 50년대 초반 프랑스에서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 연방이 창설될 때, 이탈리아에서 프롤레타리아 행동을 위한 아나키스트 그룹이 창설될 때 다시 점화되었다. 두 조직은 모두 『강령』을 참고하였다. 그리고 이 경향은 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브리튼의 혁명적 아나키스트 조직, 프랑스의 혁명적 아나키스트 조직 등의 창설까지 이어졌다.
『강령』은 계급투쟁적 아나키스트들이 더 효과적인 방법을, 정치적 고립, 빈곤과 혼란을 벗어날 방법을 모색하고, 마주한 문제의 답을 찾는 데에 있어 여전히 소중한 역사적 참고자료로 남아있다.
닉 히스, 1989
베를린 장벽 붕괴의 여파로 촉발된 아나키즘의 급격한 성장에 따라, 『강령』은 신新 아나키즘에서 반조직적 경향을 극복하고자 하는 그룹과 개인들에게 다시금 중요한 문건으로 부상하고 있다.
2001년 2월, 『강령』의 영향력은 그 어느 때보다 광범위하다. 『강령』은 터키어, 폴란드어, 스웨덴어, 프랑스어, 히브리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었다. 동유럽에서는 새로운 그룹들이 등장하고, 남아메리카에서는 『강령』이라는 역사적 문건이 도달하기도 전에 이미 『강령』이 ‘재발명’되고 있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우루과이, 레바논, 스위스, 영국, 폴란드, 아일랜드,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미국, 캐나다, 체코의 아나키스트 그룹들은 그들의 조직방법론을 『강령』을 기초로 두고 있다.
앤드류 플러드
자유의지주의적 사상의 힘과 대체 불가능한 긍정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사회혁명을 마주함에 있어 아나키스트들이 진실하고 솔직한 태도를 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아나키스트들이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를 실현하고자 영웅적으로 희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나키스트 운동이 여전히 약하다는 것은, 아나키스트 운동이 노동계급의 투쟁사에서 단지 작은 사건으로, 일화로 취급될 뿐 중요한 요인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는 것은 중대한 사실이다.
자유의지주의적 사상의 긍정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과 아나키스트 운동이 식물화 되어있는 끔찍한 상태의 대조는 여러 이유로 설명될 수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나키스트 운동에는 조직적 원칙과 실천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모든 국가에서 아나키스트 운동은 서로 모순된 이론으로, 서로 모순된 실천을 하는 몇몇 지역 조직들로 대변된다. 이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어떠한 전망도, 투쟁적 사업의 지속성도 없고, 습관적으로 사라지며, 그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러한 혁명적 아나키즘의 상태는 ‘만성적이고 일반적인 무無체계’로만 묘사될 수 있다.
무체계라는 질병은 마치 황열병과 같아서, 아나키스트 운동이라는 유기체에 스스로를 침투시킨 이후 수십 년간 그것을 흔들어왔다.
이 무체계가 이론의 부재로부터, 특히 아나키즘에서 개인성의 원칙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부터 왔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이론은 너무나 자주 무책임함과 혼동된다. ‘자기’를 주장하는 것을 사랑하는 이들은 개인적 기쁨만의 관점에서, 아나키즘 운동의 혼란한 상태에 완강하게 매달린다. 그리고 그들은 이것이 아나키즘과 그 선생들의 불변의 원칙이라 말한다.
하지만 불변의 원칙과 교사들은 완전히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분산과 산발성은 파괴적이다. 단단히 묶인 동맹이 생명과 발전의 현현이다. 이처럼 느슨한 사회적 투쟁은 계급에 뿐만 아니라 조직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드러난다.
아나키즘은 아름다운 유토피아도, 추상적 철학의 이데아도 아니다. 아나키즘은 노동대중의 사회운동이다. 그렇기에 아나키즘은, 현실과 계급투쟁의 전략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그 힘을 하나의 조직에 모아 끊임없이 소란을 일으켜야 한다.
크로포트킨(Kropotkin)은 “우리는 러시아의 아나키스트 조직을 구성하는 것이 결코 공통된 혁명적 과업에 해롭지 않다는 것에 동의한다. 오히려 조직을 구성하는 것은 매우 가치 있고 유용할 것이다.”[바쿠닌(Bakunin)의 『파리 코뮌The Paris Commune』 1892년 판본 서문에서]
바쿠닌도 아나키스트의 총체적 조직이라는 개념을 반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조직에 대한 열망과, 그가 1차 인터내셔널에서 행했던 활동들은 바쿠닌이 이러한 조직의 열정적 투사라 바라보는 것을 합당하게 해준다.
전체적으로, 사실상 모든 적극적 아나키스트 투사들은 분열된 활동에 대항하여 투쟁했다. 그리고 그들은 목적과 수단에서 단결로 묶인 아나키스트 운동을 갈망했다.
1917년 러시아혁명의 한복판에서, 총체적 조직은 가장 심오하고 긴급하게 요구되었다. 혁명의 한복판에서 자유의지주의 운동의 분파주의와 혼란은 가장 크게 드러났다. 총체적 조직의 부재는 많은 적극적 아나키스트 투사들을 볼셰비키의 멍에 아래로 몰아넣었다. 총체적 조직의 부재가 또한 많은 현대의 투사들을 소극적으로 만들고, 그 힘을 모두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도 고려해야만 한다.
우리는 아나키스트 운동의 참가자 다수가 모여 아나키즘을 일반적이고 전술적인 방침을 이용해 전체 운동을 선도할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이제 아나키즘이 무체계의 늪을 떠날 때가, 가장 중요한 전술적, 이론적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망설이는 것을 벗어날 때가, 명확하게 인지된 목표를 향해 단호하게 움직일 때가, 조직된 집단 실천을 시행할 때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조직의 필요성을 확립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그 건설의 방법론을 확립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우리는 아나키즘의 서로 다른 성향의 대표자들을 다시 모아놓는다는 ‘통합’의 방식이 이론적으로, 실천적으로 서투르기 때문에 이를 거부한다. 다양한 층위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요인들을 포함하는 이러한 형태의 조직은 단지 아나키스트 운동의 질문에 대해 서로 다른 답을 가진 개인들을 기계적으로 모아놓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임은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 필연적으로 다시 분해될 뿐이다.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의 방법론은 아나키스트 조직의 문제를 풀어내지 못한다. 이 방법론은 산업 프롤레타리아의 문제에만 천착하여 그 영역에서 힘을 얻는 데에만 집중하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의 총체적 조직이 없다면, 이 영역에서는 많은 것을, 심지어 거의 어떤 것도 얻어낼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관점에서 총체적 조직의 문제의 해답을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론은 적극적 아나키스트 투사들을 정확한 위치로 모으기 위해, 이론적 · 전술적 · 조직적으로 단일한 계획에 근거하여 배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계획을 고민하는 것은 최근의 사회적 투쟁에 있어 아나키스트들에게 주어진 핵심적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제가 추방당한 러시아 아나키스트 그룹이 그 노력을 기울여 헌신하고자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조직적 강령은 이 계획의 윤곽을, 뼈대를 그려내고자 작성되었다. 강령은 자유의지주의 세력을 투쟁할 수 있는, 하나의, 적극적인 혁명적 집단, 아나키스트 총동맹으로 묶어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강령에 비약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 강령은 모든 새롭고 실질적이며 중요한 단계들이 그러하듯 비약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내용이 빠져있거나, 어떤 내용은 불충분하게 다루어지고, 어떤 내용은 너무 세밀하게 반복적으로 다루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총체적 조직의 기반을 놓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강령으로써, 그 목적은 필요한 만큼 달성되었다.
조직을 확대하고, 깊이를 더하며, 전체 아나키스트 운동에 대한 결정적 강령으로 만들어내는 과업은 전체의 집단인 아나키스트 총동맹에게 주어졌다.
다른 한편 우리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일부 자기식 개인주의와 혼돈의 아나키즘의 대변인들이 거품을 물고 우리를 공격할 것임을, 우리가 아나키스트의 원칙을 부수고 있다 고발할 것임을 예견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개인주의적이고 혼돈스러운 요소들은 ‘아나키스트의 원칙’을 정치적 무관심, 태만, 무책임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그로써 우리의 운동을 치유 불가능한 분열로, 우리의 투쟁에 반하는 영역으로 가져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이들의 공격을 평온하게 무시할 수 있는 이유다.
우리는 다른 투사들에게 우리의 희망을 둔다. 아나키스트 운동의 비극을 경험하고, 그로부터 고통 받았음에도 여전히 아나키즘에 신실하여 고통스럽게 해결책을 찾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나아가 우리는 러시아혁명의 숨결로 태어나, 건설적 문제들의 태동기에 위치해있는 청년 아나키스트들은 반드시 아나키즘의 긍정적이고 조직적인 원칙들이 실현되는 것을 요구하리라는 것에 희망을 둔다.
우리는 모든 세계 각국으로 흩어진 러시아 아나키스트 조직들 모두가, 고립된 투사들 모두가, 공통의 조직 강령에 근거하여 단결할 것을 촉구한다.
이 강령이 혁명의 중추가 되게 하자! 이 강령이 러시아 아나키스트 운동의 투사들의 집결지가 되게 하자! 이 강령이 아나키스트 총동맹의 근간을 구성하게 하자!
세계 노동자의 사회혁명 만세!
파리 《디엘로 트루다 그룹》, 1926.6.20
1. 계급투쟁, 그 역할과 의미
- 단일한 인류는 없다.
- 계급적 인간만이 존재한다.
- 노예와 주인들
오늘날의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회는 그 이전의 사회들과 마찬가지로 ‘단일한 인류’를 제공하지 않는다.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회는 그 상태와 역할에 따라 사회적으로 명확히 구분되는 두 진영으로 나뉜다. 한 편에는 (광의의)프롤레타리아트가 있고, 한 편에는 부르주아지가 있다.
다수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수세기 동안 고통스러운 육체적 노동을 감내하여왔지만 그 과실果實은 그들이 아니라 자산, 권위, 문화적 생산물(화학, 교육, 예술)을 소유한 다른 자들, 부르주아지에게 돌아갔다. 노동대중에 대한 사회적 노예화와 착취는 현대 사회가 발을 디딘 근간이 된다. 이러한 노예화와 착취가 없이는 사회가 존재할 수 없다.
이로써 어느 시점에는 공개적이고 폭력적이 되거나, 다른 때에는 외관상 느린, 무형의 계급투쟁이 형성된다. 계급투쟁은 계급적 필요, 필수, 그리고 노동자를 위한 정의를 반영한다.
사회적 영역에서 모든 인간의 역사는 노동대중의 권리, 자유, 더 나은 삶을 위한 끝없는 투쟁의 연쇄로 설명될 수 있다. 인간 사회의 역사에서 계급투쟁은 언제나 사회의 형태와 구조를 결정하는 핵심적 요소였다.
모든 국가의 사회적 · 정치적 체제는 계급투쟁의 산물이다. 모든 사회의 근본적 구조는 우리에게 계급투쟁이 모아내고 발견될 수 있는 무대로 보인다. 계급투쟁의 세력들의 상대적 위치에 발생하는 가장 작은 변화조차도 사회의 구조에 지속적으로 수정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이야말로 총체적이고 세계적인 관점에서, 계급사회에서의 계급투쟁의 역할이라 하겠다.
2. 폭력적 사회혁명의 필요성
대중에 대한 폭력적 노예화와 착취의 원리는 현대사회의 기반을 구성한다. 경제, 정치, 사회적 관계 등 이 원리의 존재적 현현은 계급적 폭력에 의존한다. 계급적 폭력의 도구는 권위, 경찰, 군대, 사법부 등이 있다. 사회의 모든 것은, 모든 기구를 독립적으로 보면 국가의 전체 체계마저도 자본주의의 성벽에 지나지 않는다. 이 성벽에서 그들은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주시하고, 사회의 가장 사소한 것을, 근간을 위협하는 어떠한 운동이라도 힘으로 탄압할 준비를 마치고 있다.
동시에 사회의 체계는 노동대중을 무지하고 정신적으로 빈곤한 상태로 유지한다. 사회의 체계는 노동대중의 사기와 지적 수준을 높이는 것을 억제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체계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자본의 기술적인 진화와 정치체계의 완성이라는 현대사회의 진보는 지배계급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투쟁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 노동해방의 결정적 순간을 연기한다.
현대사회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를 자유로운 노동자들의 사회로 변혁하는 유일한 방법은 폭력적 사회혁명을 통한 방법밖에 없음을 결론내릴 수 있다.
3. 아나키스트와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
노동자의 노예화와 그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열망으로부터 촉발된 계급투쟁은 억압 속에서도 아나키즘의 이상을, 계급과 국가에 기초한 사회체계의 완전한 부정과 노동자 자주관리에 근거한 자유롭고 비국가주의적인 노동자들의 사회로 대체하고자하는 사상을 낳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나키즘은 지식인이나 철학자의 추상적인 개념으로부터 비롯하지 않는다. 아나키즘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노동자의 직접투쟁으로부터 비롯한다. 이 투쟁은 노동자의 필요와 필수로부터 나오고, 노동자의 자유와 평등에 대한 열망으로부터 나오며, 그 열망은 노동대중의 투쟁 속에서, 인생의 가장 영웅적인 시기가 되었을 때 살아난다.
바쿠닌, 크로포트킨 등의 위대한 아나키스트 사상가들은 아나키즘 사상을 발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그 사상을 대중으로부터 발견했다. 그들의 사상과 지식은 이를 구체화하고 확산시키는 것을 도왔을 뿐이다.
아나키즘은 개인적 노력의 결과물도 개인적 연구의 대상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아나키즘은 인본주의적 열망의 산물이 아니다. 단일한 인류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나키즘을 오늘날 인류에 대한 헌사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 아나키즘에 전체 인간에 대한 인본주의적 성격을 부여하고자 하는 시도는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거짓말에 불과하다. 이 거짓말은 필연적으로 현상을 정당화하고 새로운 착취를 정당화할 것이다.
아나키즘은 대중이 일반적으로 모든 인류의 삶을 더 낫게 만들고 싶어 하며, 현재나 미래의 인류의 운명은 착취된 노동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관점에서만 인본주의적이다. 만약 노동대중이 승리한다면 모든 인류는 다시 태어날 것이다. 만약 노동대중이 패배한다면, 폭력, 착취, 노예제, 억압은 이전과 같이 세상을 통치할 것이다.
아나키스트 사상의 탄생, 개화, 실현은 노동대중의 삶과 투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렇기에 아나키스트 사상은 노동대중의 운명과 나뉠 수 없는 관계로 묶여있다.
아나키즘은 현대의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회를 노동자들에게 그 노동의 생산물을, 자유를, 독립성을, 사회적 · 정치적 평등을 보장하는 사회로 변혁시키기를 원한다. 이 다른 사회는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 사회가 될 것이다. 이 사회에서 사회적 연대와 자유로운 개인은 최대로 드러날 것이고 이 두 이상은 완벽히 조화를 이룰 것이다.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는 물리적이든 지적이든, 사회적 가치의 유일한 창조자는 노동자라고 믿는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노동자만이 사회적 경제적 생활을 운영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는 비非노동계급의 존재를 옹호하지도, 허용하지도 않는다.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의 사회에 존재하는 한, 비非노동계급이라 해도 어떠한 의무를 부여 받지는 않을 것이다. 비노동계급은 그들이 생산적이게 되고, 다른 이들과 같은 조건 아래의 코뮌주의 사회에서, 사회의 자유로운 구성원으로서 다른 구성원들과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누리며 살고 싶어 할 때 사라질 것이다.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는 개인과 인민대중을 향한 모든 착취와 폭력을 멈추고자 한다. 그것을 멈추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모든 부문을 단결시키고, 모든 개인에게 평등한 위치를 확보하고, 최대의 후생을 확립하기 위한 경제적, 사회적 기반이 필요하다. 그 기반은 생산의 수단과 도구(산업, 운수, 토지, 원자재 등)에 대한 공동소유가, 평등과 노동계급의 자주관리라는 원칙 위에 건설된 경제조직이 될 것이다.
노동자가 스스로 운영하는 사회의 한계 속에서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는 각 개개인의 가치와 권리의 평등이라는 원칙을 확립한다(이것은 “총체적”, 혹은 “신비로운 개인성”이나, 개인성이라는 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살아가는 개인을 의미한다).
4. 민주주의에 대한 반대.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회의 한 형태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현대 사회의 두 대립적 계급, 노동계급과 자본계급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 두 계급의 혼합이 자본주의의적 사유재산의 근간이 된다. 이러한 혼합은 의회와 민족 대의 정부로 드러난다.
공식적으로, 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단결의 자유, 평등 등을 법으로 규정한다.
현실적으로 이 모든 자유들은 상대적이다. 이 모든 자유는 그것이 부르주아지와 같은 지배계급의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된다.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의 원칙을 불가침의 원칙으로 보호한다. 때문에 민주주의는 부르주아지가 전체 경제를, 언론을, 교육을, 과학을, 예술을 통제할 권리를 준다. 그리고 이것이 부르주아지를 그 사회의 절대적 주인으로 만든다. 경제 생활권을 독점함으로써 부르주아지는 정치권에서 무제한적 권력을 확립할 수 있다. 사실상 민주주의 국가의 의회와 대의정부는 부르주아의 집행 기관에 불과하다.
결과적으로 민주주의는 정치적 자유의 형상 뒤에, 허구의 민주적 보장 뒤에 숨은 부르주아 독재의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5. 국가와 권위에 대한 부정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국가가 복잡한 정치적, 시민적, 사회적 관계를 조율하며 법과 정의를 수호하는 기구라고 정의한다. 아나키스트들은 이 정의에 완전히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정의가 불완전하다고 생각한다. 법과 정의의 근간은 소수에 대다수 인민이 예속되는 것이라는 명제가 있어야, 이것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목적이라는 논의가 있어야 이 정의가 완전해질 것이다.
국가는 부르주아가 확보한 조직된 폭력임과 동시에, 그 집행기구의 체계다.
좌파 사회주의자들, 특히 볼셰비키들 역시 부르주아 국가와 권위가 자본에 복무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권위와 국가가 사회주의 정당의 손에 들어온다면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해방을 위한 투쟁에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당들은 사회주의적 권위와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위한 존재들이다. 이들 중 일부(사민주의자들)는 권력을 평화적, 의회주의적 수단으로 확보하고자 하고, 다른 이들(볼셰비키, 사회혁명당 좌파)은 권력을 혁명적 수단으로 확보하고자 한다.
아나키즘은 이 둘 모두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으며 노동해방 투쟁을 저해한다고 생각한다.
권위는 언제나 인민대중의 착취와 예속에 의존한다. 모든 권위는 착취로부터 태어났거나 착취를 위해 창조되었다. 폭력과 착취가 없는 권위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다.
국가와 권위는 대중으로부터 모든 주도권을 빼앗아가고, 창조와 자유로운 행동의 영혼을 죽이며, 그들에게서 복종을, 기대를, 사회적 사다리를 오를 수 있다는 희망을, 지도자를 향한 맹신을, 권위를 나누고 있다는 환상을, 노예의 심리상태를 길러낸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해방은 오직 광대한 노동대중의 직접적 혁명 투쟁과 자본주의 체계에 대항하는 계급조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현재의 질서를 긍정한 채 평화로운 수단으로 사회민주당이 권력을 확보하는 것은 노동 해방이라는 과업에서 단 한 발짝도 전진하는 길이 아니다. 실질적인 힘,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권위는 경제와 정치를 통제하는 부르주아지에게 여전히 귀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혁의 형태에서 사회주의적 권력의 역할은 체제 변혁이 아닌 개량으로 축소된다(독일, 스웨덴, 벨기에 등의 사회민주당을 보라).
사회적 봉기를 통해 “프롤레타리아 국가”를 조직함으로써 권력을 확보하는 것 역시 노동의 진정한 해방이라는 대의에 전혀 복무할 수 없다. 혁명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어야 할 국가는 그 자신의 필요와 성격에 따라 불가피하게 왜곡된다. 국가는 그 자체로 목표가 되고, 특정한 특권 계층을 만들어내고,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적 권위와 국가를, 언제나의 대중에 대한 폭력적 예속과 착취를 재확립하게 된다(볼셰비키의 “노동자-농민 국가”를 보라).
6. 사회적 투쟁과 사회혁명에서 대중과 아나키스트의 역할
사회혁명의 핵심적 세력은 도시 노동계급, 농민 대중, 그리고 노동 인텔리겐치아의 일부이다.
참고 : 노동 인텔리겐치아는 도시 · 농촌 프롤레타리아트와 같은 방식으로 착취되고 억압받고 있지만, 인텔리겐치아들은 노동자와 농민에 비해 단결력이 약한 경향이 있다. 이것은 부르주아지가 인텔리겐치아에게 노동자와 농민에 비해 경제적 특권을 허용하여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텔리겐치아 계층의 가장 불우한 일부만이 사회혁명에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이유다.
아나키스트들과 국가주의적 정당들은 대중이 사회혁명과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해야 하는 역할에 대해 서로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다. 볼셰비키와 그와 유사한 경향들은 대중이 오직 파괴적인 혁명 본능만을 가지고 있어서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본다. 때문에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작업은 국가의 정부를 구성하는 당 중앙위원회의 손에 맡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아나키스트들은 노동 대중들이 거대한 창조적이고 건설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은 이 가능성의 실현을 막고 억제하는 장애물을 치우기를 열망한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가 가장 핵심적인 장애물이라고 여긴다. 국가는 대중의 권리를 빼앗고, 그들의 경제적, 사회적 생활 기능을 앗아간다. 국가는 미래 “언젠가” 해소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으로 해소되어야 한다. 국가는 노동자 혁명의 첫날, 노동자들의 손으로 파괴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어떠한 형태로도 다시 구성되어서는 안 된다. 국가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스스로 운영하는 노동자 조직의 단결한 연방으로 대체될 것이다. 이 체계는 일당독재와 같은 모든 형태의 권위주의적 조직을 배격할 것이다.
1917년의 러시아혁명 과정에서 노동자와 농민의 소비에트, 공장 위원회를 설치과정은 사회적 해방의 과정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러시아혁명의 서글픈 오류는, 적절한 시기에 국가권력의 조직을 청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임시정부에 대해 그러했고, 그에 뒤이은 볼셰비키 권력에 대해서도 그러했다. 볼셰비키들은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를 등에 업고 부르주아 국가를 재조직했고, 그 국가를 지지하고 유지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대중의 창조적 활동을 말살했다. 볼셰비키는 국가가 없는 사회주의 사회를 향한 첫 걸음을 상징하던 소비에트와 공장위원회의 자유로운 체계를 무너트렸다.
아나키스트의 행동은 혁명 전과 혁명 중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두 지점 모두에서 아나키스트들은 투쟁의 목표와 그 목표를 실현할 방법에 대한 명확한 인지를 가진 조직된 세력으로서만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
혁명 전 시기 아나키스트 총동맹의 근본적 과업은 노동자와 농민들을 사회혁명을 위해 준비시키는 것이다.
공식적 (부르주아)민주주의를, 권위와 국가를 거부하는 것에서, 노동 해방의 완성을 선포하는 것에서 아나키즘은 계급투쟁의 철저한 원칙을 강조해야 한다. 아나키즘은 대중의 계급의식과 혁명적 비타협성을 갖추어나가야 한다.
특히 계급적 비타협성에 대해, 반민주주의에 대해, 아나키즘적 코뮌주의의 반국가주의에 대해 대중에 대한 자유의지주의적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교육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대중적 아나키스트 조직 역시 필요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두 가지 방향의 작업이 필요하다. 한 편으로는 혁명적 노동자와 농민들을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의 이론적 기반에 따라 묶어낼 필요가 있다(구체적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 조직 건설). 다른 한 편으로는, 혁명적 노동자와 농민들을 소비와 생산이라는 경제적 기반에 따라 다시 묶어낼 필요가 있다(혁명적 노동자와 농민의 생산 조직, 그리고 노동자와 자유농민의 협동조직). 노동자와 농민 계급이 생산과 소비를 기반으로 조직되고, 이 조직에 혁명적 아나키스트가 침투할 때, 이 조직은 사회혁명의 가장 강한 지점이 될 것이다.
이 조직들이 아나키스트적 방법론으로 의식화되고 조직될수록, 이 조직들이 혁명의 순간에 비타협적이고 창조적인 의지를 더 많이 드러낼 것이다.
러시아의 노동계급에 관하여 말하자면, 대중의 자유로운 활동에 대한 요구를 묶어두었던 볼셰비키 독재 8년간, 권력의 본성이 어느 때보다 잘 드러났다. 러시아 노동계급은 그 안에 아나키스트 대중운동 구성에 관한 거대한 잠재력을 숨기고 있었다. 조직된 아나키스트 투사들은 즉시 온 힘을 다해 그 요구와 가능성을 만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 요구와 가능성이 개량주의로 타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권력에 의해 부서지고, 그로부터 탈출할 길을 찾는, 마찬가지로 거대한 혁명적 잠재력을 가진 빈농 조직과도 함께 해야 한다.
혁명 시기 아나키스트의 역할은 자유의지주의적 이상에 대한 선전선동만으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삶은 이런 저런 사상들의 선전을 위한 경기장이 아니다. 삶은 투쟁과 전략과 경제 · 사회생활의 운영을 위한 사상적 열망의 장이다.
그 어떤 다른 사상보다도, 아나키즘은 혁명을 선도하는 사상이 되어야 한다. 아나키즘적 이론에 근거할 때만 사회혁명이 완전한 노동의 해방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혁명 시기 아나키즘의 이상이 선도적 위치를 잡는 것은, 그 이론을 따른 사건의 방향성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이론적 추동력은 국가주의적 당들의 정치적인 지도력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인 지도력은 결과적으로 국가권력만을 낳을 뿐이다.
아나키즘은 정치적 권력이나 독재 따위를 원하지 않는다. 아나키즘의 가장 큰 열망은 대중이 사회혁명으로 가는 바른 길을 택하는 것을,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을 돕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이 사회혁명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혁명의 방향성과 목표, 즉 자유로운 노동자의 이름으로 자본주의 사회를 철폐하는 것을 유지하는 것 역시 필요하다. 러시아혁명의 경험이 보여주었듯, 이 과업은 결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수많은 당들이 운동의 방향을 사회혁명에 반하는 방향으로 지도하려 하기 때문이다.
대중들이 아나키즘적 경향성을 통해 사회혁명에 있어 스스로를 깊게 표현한다 하더라도, 이 경향성은 분산되고, 통일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자유의지주의적 이상으로 추동된 조직을, 아나키즘적 지향과 목표를 혁명에서 유지하는데 필요불가결한 조직을 만들지 못한 채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론적 추동력은 오직 이 목적만을 위해 대중이 건설한 집단을 통해서 표현되어야만 한다. 아나키스트 조직이 그 집단을 정확히 구성한다.
이 집단의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의무는 혁명 시기에 매우 크다.
아나키스트 조직은 그 주도권을 드러내고, 사회혁명의 모든 영역에 총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혁명의 지향과 총체적 성격을 결정하는 과정에, 혁명의 긍정적 과업들에, 새로운 생산과 소비에, 농민의 문제에, 이 모든 영역에 참여해야 한다.
모든 문제들에 대해 대중은 아나키스트들로부터 명확하고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한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이 혁명과 사회 구조에 관한 이론을 선언하는 순간부터, 아나키스트들은 모든 질문에 대하여 명확하게 답변하고, 그 질문들을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의 일반이론과 연관 짓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 전력으로 헌신할 의무가 생긴다.
아나키스트 총동맹과 아나키스트 운동은 오직 이 방법을 통해서만 사회혁명의 이론적 추동력으로서 자신의 기능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7. 이행기
사회주의 정당들은 ‘이행기’라는 단어를 “구체제 질서를 떨쳐내고 새로운 경제적 · 사회적 체계를 건설하는데(이 체계를 통해 노동자의 완전한 해방은 이루어지지지 않지만) 필요한” 절대적 시기라 이해한다. 그렇기에 모든 사회주의 정당의 최소강령(그 목적을 자본주의 사회의 완전한 변혁이 아니라 노동계급이 마주하는 즉각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이행기 강령이다. 이를테면, 사회주의적 기회주의자들의 민주주의 강령이나, 공산주의자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강령 같은 것 말이다.
이행기 강령들은 노동자의 이상, 즉 독립성과 자유와 평등을 완전히 쟁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상정한다.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체계의 기구들인 국가적 강제, 생산수단의 사적 소우, 관료제 등을 당의 강령적 목표에 따라 남길 수밖에 없다.
원칙적으로 아나키스트들은 이러한 강령들을 반대해왔다. 아나키스트들은 착취와 대중 강제의 원칙을 유지하는 이행기 체계를 건설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새로운 노예제를 건설할 것이라 믿는다.
이러한 정치적 최소강령을 확립하는 대신, 아나키스트들은 언제나 즉각적인 사회혁명을 주장해왔다. 사회혁명을 통해 자본가 계급으로부터 경제적, 사회적 특권을 박탈하고, 생산수단과 경제 · 사회생활의 기능들을 노동자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아나키스트들은 이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행기에 대한 개념은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해도, 구체제적 요소를 갖춘 어떠한 체계를 만드는 것이라도 분명히 반사회적이다. 이행기는 언제나 구체제적 요소들이 다시금 힘을 찾고 사회를 퇴행시키는 위협이 되어왔다.
이에 대한 가장 혹독한 예시는 볼셰비키들이 러시아에서 확립한 ‘프롤레타리아 독재’ 체제라 할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완전한 코뮌주의를 향한 이행기적 단계에 불과해야 한다. 현실에서 이 단계는 늘 그래왔듯, 노동자와 농민이 제일 바닥에 있는 계급사회의 재건으로 귀결되었다.
코뮌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것의 중점은 모든 개인들에게 혁명의 첫 날, 그 요구를 충족할 수 있는 자유를 최대한 보장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기반을 쟁취하고, 개인의 평등한 관계에 관한 원칙을 확립하는 것까지 포괄해야 한다. 풍족함에 대한 문제는 원칙의 문제가 아닌 기술적 문제로 보아야 한다.
새로운 사회가 세워지고 유지되어야 할 근본적 원칙은 관계의 평등에 관한 원칙과 노동자의 자유와 독립성에 관한 원칙이다. 이 원칙은 사회혁명을 위해 일어난 대중의 가장 중요한 근본적 요구를 대변한다.
사회혁명이 노동자의 패배로 끝나서 다시 투쟁과 자본주의에 대한 새로운 공세를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되든지, 아니면 노동자의 승리로 끝나서 노동자가 토지, 생산수단, 사회적 기능의 수단을 손에 쥐는 경우가 되든지, 어떤 경우에라도 노동자들은 자유로운 사회의 건설을 시작해야 한다.
한 번 시작되면 스스로를 끊임없이 강화하고 완성해나가는 것이 코뮌주의 사회의 건설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 생산과 사회의 기능들을 노동자가 장악하는 것은 국가의 시대와 비국가의 시대를 정확하게 경계 짓는 선이 될 것이다.
만약 아나키즘이 고통 받는 대중의 대변자가 되고 싶다면, 사회혁명의 깃발이 되고 싶다면, 아나키즘은 옛 체제의 흔적 위에 강령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행기라는 기회주의적 경향들처럼 근본적 원칙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그 원칙을 가장 날카롭게 발전시키고, 적용시켜야만 한다.
8. 아나키즘과 조합주의syndicalism
우리는 조합주의가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에 반하는 경향이라 판단하며, 그것이 인공적이고, 근본도 의미도 없는 것이라 본다.
아나키즘과 조합주의는 서로 다른 차원의 이념이다. 코뮌주의, 즉 자유로운 노동자들의 사회는 아나키스트 투쟁의 목표인 반면, 조합주의, 즉 혁명적 노동자들의 직장에서의 운동은 혁명적 계급투쟁의 형태 중 하나일 뿐이다. 혁명적 조합주의는, 다른 직업 그룹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을 생산에 기초하여 단결시키기 위한 분명한 이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혁명적 조합주의는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것은 다양한 정치적 모임들의 이데올로기를 튕겨낼 뿐이다.
혁명적 조합주의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정립해보자. 혁명 이후 혁명적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질문, 즉 혁명적 노동조합이 새로운 생산의 조직가가 되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들이 그 역할을 노동자 소비에트나 공장위원회에 두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은 미루어두자. 우리는 아나키스트들이 혁명적 노동운동으로써 혁명적 조합주의에 참여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오늘날 부각되고 있는 문제는 아나키스트들이 아나키즘적 조합주의에 참여해야 하는 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참여하고, 어떠한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아나키스트들이 조합주의 운동에 개인으로써, 선전가로서 진입하여온 현대까지의 시기를 노동운동을 향한 기능공의 관계의 시기라 바라본다.
아나키즘적 조합주의는 혁명적 조합주의의 좌익에 자유의지주의적 이상을 부여하여 아나키즘 성격의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한다. 이것은 전진인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은 실증적 방법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아나키즘적 조합주의가 노동조합 운동의 ‘아나키화’를 그 운동 바깥에서 조직된 아나키스트들을 엮어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반이 될 때에만, 아나키즘적 노동조합주의는 ‘아나키화’ 될 수 있고, 기회주의와 개량주의로 향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조합주의는 일관성 있는 사회적 · 정치적 이론이 없는 노동자들의 모임에 불과하고,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사회적 문제를 풀어낼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운동에 있어 아나키스트들의 과업은 그 운동 안에서 자유의지주의적 이론을 발전시키고, 그 운동을 자유의지주의적 방향으로 유도하고, 그 운동을 사회혁명의 적극적 무기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노동조합주의가 아나키즘 이론을 확보하지 않는다면, 시기가 도래했을 때, 노동조합주의는 결국 국가주의적 정당의 이데올로기로 돌아설 것이다.
혁명적 노동자운동에서 아나키스트들의 과업은 노동조합 바깥의 아나키스트 조직과 그 활동을 엮어냄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다르게 말하자면, 우리는 혁명적 노동조합을 아나키스트의 총체적 조직의 방향성에 따라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조직된 세력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를 아나키스트적 노동조합을 건설하는 것으로 제약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든 노동조합에 이론적 영향력을 행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소규모 실험적 집단이 아닌 엄격하게 조직된 아나키스트 집단을 통해서만 성취할 수 있다. 소규모 실험적 집단에서는 조직적 연계도, 이론적 합의도 없다.
회사, 공장, 작업장에서의 아나키스트 그룹들이 아나키스트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혁명적 노동조합의 투쟁을 조합주의에 내재한 자유의지주의적 이상으로 선도하게끔 하고, 이 그룹들을 아나키스트의 총체적 조직의 행동으로 다시금 조직하는 것. 이것이 노동조합주의에 대한 아나키스트들의 수단과 방법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 투쟁의 근본적 목표는 혁명을 통해 자유롭고 평등한 코뮌주의 사회를,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원칙에 따라 건설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회는 스스로 이루어지지 않고, 오직 사회적 봉기의 힘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이 사회의 실현은 영광된 노동자의 조직된 세력이 명확한 길 위에서 선도하는 사회혁명적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금부터 시작하여 이 길을 지적하는 것이 사회혁명의 첫 날부터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체적 문제들에 대한 안을 구성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하겠다.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노동자가 부르주아 자본주의 체제와 그 대변인들로부터 승리한 이후에 가능한 것은 자명하다. 새로운 경제와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국가의 권력과 예속의 체계가 여전한 상황에서,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산업과 농업을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건설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과적으로 사회혁명의 첫 번째 과제는 자본주의 체계에 내재한 국가주의적 조직을 분쇄하고, 이를 통해 권력의 수단으로 대변되는 부르주아와 특권계급의 요소들을 수용하고, 노동자들의 반란의지를 확립해내는 것이다. 혁명의 이러한 공세적이고 파괴적인 측면은 사회혁명의 의미와 요점을 구성하는 과업들을 달성하는 길을 열 것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과업들을 해결해야 할 것이다.
1. 산업생산의 문제를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의 관점에서 해결.
2. 농업의 문제를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의 관점에서 해결.
3. 소비의 문제를 해결
생산
한 나라의 산업은 수 세대 간 노동자들이 쏟아온 노력의 결과에 따르며 산업의 서로 다른 분야들이 서로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우리는 전체 생산을 모든 노동자가 동시에 일하고 있는 하나의 작업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바라볼 수 있다.
한 나라의 생산기능은 국제적이고 전체 노동계급에 속한다. 이 테제는 새로운 생산의 성격과 형태를 결정한다. 노동자들이 생산한 생산물들은 모두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생산은 또한 국제적이며 일반적이다. 어떤 범주에 속해있든, 생산물들은 노동자 전체에게 제공되는 일반기금으로써, 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필요한 만큼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
새로운 생산의 체계는 모든 형태의 관료제와 착취를 대체하고, 형제애적 협동과 노동자의 연대의 원칙을 그 자리에 대체해 넣을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간관리계급의 역할을 수행하는 중산계급(소상인 등)은 부르주아지와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생산의 새로운 방식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계급들은 스스로 노동자의 사회 바깥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사장도, 기업가도, 소유주도, 국영공장 관리인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영은 새로운 생산 방식을 노동자에 의해 만들어진 행정(노동자의 소비에트, 공장 위원회, 혹은 노동자의 자주경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기구들은 코뮌의 수준에서, 최종적으로는 총체적이고 연방적인 생산 관리의 측면에서 상호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 기구들은 대중에 의해 스스로 건설되고, 대중의 통제와 영향력 아래에 있어야 하며, 꾸준히 대중에 의한 자주관리라는 이상을 갱신하고 실현해야 한다.
생산수단이 모두에게 귀속되어있는 통합적 생산은 관료제를 형제애적 협동의 원칙으로 대체하고, 모든 노동자의 평등한 권리를 확립하며, 노동자가 통제하고 노동자가 선출한 기구에 의한 생산 통제를 확립하여야 한다. 이것이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를 실현하는 길을 향한 첫 번째 실질적 단계가 될 것이다.
소비
혁명의 과정에서 소비의 문제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1. 생산물 탐색과 소비의 원칙
2. 분배의 원칙
소비재를 분배하는 데에 있어, 그 해결책은 가능한 생산량과 분배 대상의 자유로운 합의의 원칙에 의존해야 한다.
사회혁명은 사회질서의 총체적 재건으로서, 모든 인민의(반혁명적 이유를 위해 생산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한 비 노동자 집단은 예외로 하자) 생활적 필요를 충족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혁명의 영역에서 모든 사람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것은 소비재의 전체적인 예비에 의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물자가 부족한 경우라면 그것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 즉 아이와 병약자, 노동자의 가족들에게 우선 분배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분배되어야 할 것이다.
더 어려운 문제는 소비의 기반을 조직하는 것이다.
혁명의 첫 날부터 농장들이 전체 인구의 삶을 유지할 만큼의 생산을 감당하지 못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동시에 농민들은 도시와 달리 풍요로울 것이다.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자들은 도시 노동자들과 농업 노동자들 간에 상호주의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혁명이 노동자와 농민 공동의 노력으로만 실현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결과적으로 소비 문제의 해결은 이 두 종류의 노동자들 간에 있는 혁명적으로 끈끈한 협동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협동을 확립하기 위해 생산의 수단을 확보한 도시 노동계급은 농촌 노동계급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공급해야 하고, 농업 집단에게 매일의 생산물을 제공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농민의 필요라는 지점에서 노동자들에 의해 체현된 연대는 농민들이 같은 행동을 하도록 해서 그들의 집단적 노동의 생산물을 도시에 제공하도록 할 것이다.
노동자와 농민의 협동체는 도시와 농촌이 식량과 생산재의 필요를 만족하는 것을 확립하게 하고, 나아가 노동자 · 농민의 경제, 사회생활을 보장하고 발전시키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주요 기구가 될 것이다. 이 협동체는 도시와 농촌 사이의 영구적인 공동기구로 바뀔 것이다.
소비재를 제공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영구적인 생산물의 산을 만들어 새로운 생산양식의 결정적 효과를 그 결과로 가질 수 있게 할 것이다.
토지
농업 문제의 해결에 있어 우리는 타인의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는 자영농과 농촌의 임금 프롤레타리아트를 주된 혁명적 세력이라 간주한다. 이들의 과제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과 코뮌주의 원칙에 따라 토지의 재분배를 확립하는 것이다.
산업과 마찬가지로 토지는 수 세대 간 노동자들에 의해 경작되어 왔으며 그 공통된 노력의 산물이다. 토지 역시 모든 노동대중에게 속하며, 어떠한 특정인에게도 속하지 않는다. 토지를 사고팔거나 임대하는 것은 발생해서는 안 된다. 토지는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토지는 대중과 공동체의 일반인들이 생활의 수단을 생산하는 작업장이기도 하다. 이 작업장은 역사적 조건에 따라 모든 노동자(농민)들이 모든 일을 혼자, 다른 생산자들과 무관하게 진행하는 데 익숙한 작업장이다. 산업의 영역에서 집단적 생산은 필수적인 것이지만 농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토지를 경작한다.
결과적으로 농민들이 토지와 그 경작 수단을 손에 넣고 그것을 팔거나 임대할 수 없다면, 그것을 이용하는 형태의 문제, 그리고 (공동체, 또는 가족에 의한) 경작 방법의 문제는 산업의 영역에서와는 달리 즉각적이고 완전하며 결정적인 해결책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토지의 경작과 이용의 방법은 외부적 압력을 통해서가 아니라 혁명적인 농부들 스스로가 확립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회혁명 이후 건설할 코뮌주의 사회가 노동자들을 예속과 착취에서 구원하고 노동자들에게 완전한 자유와 평등을 줄 것이라 믿는 이상, 농민들이 대중의 다수를 구성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들이 구성할 농업 체계가 혁명의 운명에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인 이상, 그리고 농업에서의 사적 경제가 사유재산을 구축하고 자본을 부활시키게 될 것인 이상, 우리는 농업의 문제를 집단적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농민들에게 집단적 농업경제에 대한 끊임없는 선전을 시작해야 한다.
자유의지주의적 농민조합의 창설은 이 과업의 달성을 크게 도울 것이다.
이 관점에서 농업의 진화를 촉진하고 도시에서 코뮌주의를 실현할 수 있게끔 만들 기술적인 진보는 매우 중요하다. 만약 산업 노동자들이 개별적 혹은 독자적 그룹이 아니라 산업의 모든 분야를 총괄하는 코뮌주의적 집단으로서 농민들과 관계를 맺는다면, 그들이 농촌의 필요성을 고려하여 농촌에 도구와 기계를 제공한다면 이것이 농민들을 농업 코뮌주의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혁명의 방어
‘혁명 첫 날’의 문제 중에는 혁명의 방어에 관한 문제도 포함된다. 기본적으로 혁명을 방어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생산, 소비, 토지의 문제를 긍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이 문제들이 올바르게 해결된다면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사회를 다른 것으로 대체하거나, 그 균형을 깨려는 반反혁명은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노동자들은 그 사회의 공고한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 혁명의 적들과의 혹독한 투쟁을 진행해야 한다.
사회혁명은 특권층과 비노동계급의 존재를 위협한다. 그렇기에 사회혁명은 이 계급들을 대변하는 절실한 저항을 마주할 것이며, 격렬한 내전이 촉발될 것이다.
러시아에서의 경험이 보여준 것과 같이 이러한 내전은 몇 개월이 아니라 몇 년에 걸친 문제가 될 것이다.
혁명 초기에 노동자들의 첫 걸음이 얼마나 즐겁든 간에 지배계급들은 오랫동안 그에 맞서 저항할 역량을 유지할 것이다. 수년간 그들은 혁명에 대한 공세를 퍼붓고, 그들이 빼앗긴 권력과 특권을 다시 확보하고자 할 것이다.
노동자들의 승리에 대하여 막대한 군대와, 군사기술, 전략, 자본이 쏟아 부어질 것이다.
혁명의 쟁취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혁명을 방어하고 반동의 공세에 투쟁력으로 대응하기 위한 기구를 만들 필요가 있다. 혁명의 첫 날, 무장한 노동자와 농민들이 이 투쟁력을 구성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자발적 무장력은 초기에만 유효할 것이다. 내전이 최고조로 치닫고 양측에서 정식적으로 구성된 군사기구를 만들고 나면 그 유효성은 줄어든다.
사회혁명의 가장 핵심적인 순간은 권위의 억압 중이 아니다. 오히려 패배한 체계의 세력이 노동자들을 향한 총체적 공세를 시작할 때, 혁명을 보장하는 것이 문제로 도출될 때가 가장 핵심적이다. 이 공세는, 그리고 내전은 노동자들이 혁명군을 조직할 수밖에 없게 할 것이다. 혁명군의 요지와 핵심적 원칙이 먼저 결정되어야 한다. 우리가 국가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통치를 거부하는 만큼 우리는 노동자의 군사력을 조직하는 국가주의적 방법론(즉 징병제에 기반을 둔 국민군)도 거부한다.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의 근본적 입장에 따라 노동자의 군대를 구성하는 기반은 자발적 복무가 원칙이 되어야 한다. 러시아혁명에서 군사행동을 이끈 파르티잔, 노동자 · 농민으로 구성된 반란군 분대가 그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발적 복무”와 파르티잔 활동은 그 단어 그대로만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노동자와 농민들이 총체적인 작전 계획에 따르는 협동 없이 각자의 책임과 위험을 안은 채 지역의 적들에 대한 각개전투를 시행하는 것으로 이해되면 안 된다. 이 시기 파르티잔들의 활동과 전술은 전반적인 혁명 전략에 따라 집행되어야 한다.
모든 전쟁이 그러하듯 노동자들이 군사 행동에 있어서의 두 가지 기본 원칙, 즉 작전 계획에 있어서의 단결과 지휘체계의 통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승리할 수 없다. 혁명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부르주아지가 조직된 세력을 가지고 혁명을 공격해 올 때 찾아온다. 이 결정적 순간에 노동자들은 군사 전략의 원칙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기에 군사 전략에 의해 만들어진 필요와 반혁명의 전술을 모두 고려할 때, 무장 혁명세력은 통일된 지휘체계와 작전계획을 가진 혁명군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이 군대는 다음과 같은 원칙들을 근거로 할 것이다.
1. 계급적 성격의 군대
2. 자발적 복무(혁명을 방어하는 데에 있어 모든 강제성은 제외되어야 한다.)
3. 자유로운 혁명적 규율(자기 규율)(자발적 복무와 혁명적 자기규율은 완전히 호환된다. 그리고 이것이 혁명군의 사기를 어떠한 국민군보다도 높일 것이다.)
4. 경제 · 사회생활을 통제하기 위해 대중에 의해 세워져 전국적으로 존재하는 노동자와 농민의 조직과 그 조직이 대변하는 노동자, 농민 대중에 대한 완전한 복종
다르게 표현하자면 혁명의 방위기구는 주요한 군사적 전선뿐 아니라, 내적 전선(부르주아지의 음모, 반혁명 행동의 준비)에서 반혁명과의 전투를 책임진다. 이 방위기구는 전적으로 노동자와 농민의 생산조직의 관할 아래에 있어야 한다.
참고 : 군대는 온전하게 자유의지주의적 코뮌주의의 원칙에 따라 구성되어야 하지만, 그 자체로 원칙의 핵심인 것처럼 여겨져서는 안 된다. 군대의 구성은 혁명이 촉발한 결과,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강요되는 내전 과정에서의 전술적 수단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부터 이 전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내전이 빚을 차질은 전체 사회혁명의 결과에 재앙을 초래할 수 있기에, 그러한 차질을 예방하고 혁명을 수호하기 위해서라도 군대에 대해서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상술한 총체적, 건설적 입장은 혁명적 아나키즘 세력의 조직적 강령을 구성한다.
이 강령은 결정적인 전술적, 이론적 지향을 포함하고 있으며, 조직된 아나키즘 운동의 투사들을 모아내기 위한 필요최소의 강령이다.
강령은 아나키즘 운동의 모든 건강한 요소를 모아 적극적이고 영구적인 투쟁을 표방하는 하나의 총체적 조직체, 아나키스트 총동맹을 구성하기 위하여 설계되었다. 모든 아나키스트 투사들의 세력은 이 조직의 건설을 목표로 두어야 한다.
아나키스트 총동맹의 기본적인 조직 원칙은 아래와 같아야 한다.
1. 이론적 단결 :
이론은 개인과 조직의 행동을 목표를 향해 설정된 경로로 이끄는 힘을 대변한다. 자연스럽게 총동맹에 가입한 모든 개인과 조직 들은 공통된 이론을 갖추어야 한다. 총동맹의 총체적이고, 세부적인 활동들은 동맹이 천명한 이론적 원칙과 완전히 합치해야 한다.
2. 전술적 단결, 혹은 집단행동 :
동일한 논리로, 동맹 안에서 각 개인과 조직들이 채택하는 전술적 방법론은 통일성을 가져야 한다. 즉 상호간에 엄격히 합치해야 하며, 동맹의 총체적 이론과 전술에도 합치해야 한다.
운동에서 공통된 전술은 조직뿐 아니라 그 운동 자체의 존재에 있어서도 중요한 문제다. 공통된 전술은 각자의 전술이 서로와 반하면서 촉발될 재앙을 제거한다. 공통된 전술은 운동의 모든 힘을 집중시켜 확고한 목표를 향한 공통된 지침을 지니도록 한다.
3. 공동 책임 :
개인의 책임으로 활동하는 것은 분명히 철폐되어야 하고, 아나키즘 운동의 대열에서 배제되어야 한다. 혁명적(사회적, 정치적) 삶의 영역은 무엇보다도 자연스럽게 집단적이다. 이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사회혁명을 위한 활동은 개별 투사들의 개인적 책임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
아나키스트 전체 운동의 집행기관으로서 아나키스트 동맹은 무책임한 개인주의적 전술을 공고하게 반대하고, 집단책임의 원칙으로 대오를 정비해야 한다. 모든 구성원의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동맹 전체가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모든 구성원은 동맹의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행동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4. 연방주의 :
아나키즘은 언제나 중앙집권화 된 조직을 거부해왔다. 그리고 그 거부는 대중의 사회생활의 영역과 정치적 행동의 영역 모두에 대한 것이었다. 중앙집권적 체계는 비판적 정신과 주도권, 개인의 독립성의 소멸에 근거한다. 그리고 대중이 ‘중앙’을 맹종하도록 만든다. 이 체계의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결과는 사회생활과 조직의 생활을 예속시키고 기계화시키는 것이다.
아나키즘은 언제나 중앙화가 아니라 연방주의를 주장하고 옹호해왔다. 연방주의야 말로 개인과 조직이 공통된 명분에 복무하면서도 독립성과 자주성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각 개인의 자주성을 회복하고 높은 수준의 권리를 보장하며 그들의 사회적 필요와 필수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 모든 개인의 능력이 건강하게 현현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아나키스트 대오 내에서 연방주의의 원칙은 상당히 자주 왜곡되어 왔다. 연방주의의 원칙은 마치 개인이 조직에 대한 어떠한 의무도 지지 않은 채 개인의 ‘에고ego’를 표현하는 것이 옳다는 원칙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 잘못된 해석이 우리 운동을 해체시켜 왔다. 이제 공고하며 불가역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끝낼 시점이다.
연방은 개인과 조직이 공동의 목적을 향하여 집단적으로 활동하기 위한 자유로운 합의를 중요히 여긴다.
하지만 합의와 그에 근거한 연방적 조직은 그 합의에 참가한 모든 구성원들과 조직이 합의한 의무를 거의 완전히 이행하며 공동체적 결정을 따른다는 조건에서만 현실이 될 수 있다. 사회적 프로젝트에서 연방적 기반이 얼마나 광범위하든 간에 집행이 결여된 결정은 있을 수 없다. 특히 노동자와 사회혁명에 관한 의무를 져야 하는 아나키스트 조직에게 이것은 더욱 당연한 문제다. 결과적으로 연방주의적 아나키스트 조직은 각 구성원의 독립성과 자유로운 의견과 개별적 자유와 주도권을 인정하면서도 각 구성원이 확고한 조직적 임무를 다할 것을, 공동체적 결정의 집행을 요한다.
이 조건 하에서만 연방주의의 원칙이 살아나고, 아나키스트 조직이 올바르게 기능하고, 결정적 목적을 향해 순항할 수 있다.
아나키스트 총동맹의 개념은 아나키스트 운동의 모든 세력의 협동과 동의의 문제를 제기한다.
동맹에 가입한 모든 조직은 유기체의 세포와 같다. 모든 세포는 그 사무국을 통해 조직의 정치적, 기술적 작업을 집행하고 이론적으로 지도해야 한다.
동맹에 가입한 조직의 행동적인 협력이라는 지점에서, 동맹 집행위원회라는 특별한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 집행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동맹이 위임한 결정의 집행, 동맹의 이론적 입장과 총체적 전술에 따라 각개 조직에 이론적, 조직적 지침을 주는 것, 3. 운동의 전체적 상황 관측, 동맹 내 모든 조직들의 조직적 연결망 유지, 동맹 외 조직들과의 관계 유지.
집행위원회의 권한, 책임과 실질적 과업은 동맹 총회를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아나키스트 총동맹은 구체적이고 확고한 목표를 가진다. 사회혁명의 승리라는 명분을 위해, 총동맹은 노동자와 농민들 중 가장 혁명적이고 매우 핵심적인 분자들을 매혹할 수 있어야 하고 흡수해야 한다.
아나키스트 총동맹은 사회혁명을 찬양하며 나아가 계급사회의 철폐를 열망하는 반권위주의 조직으로서 사회 근간의 두 계급, 노동자와 농민을 동등하게 옹호한다. 총동맹은 두 계급을 해방하는 과업에 동등한 역량을 투여한다.
아나키스트 총동맹은 노동조합과 도시의 혁명적 조직들의 선구자이자 이론적 이정표가 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착취당한 농민 대중에 대해서도 동일하다. 아나키스트 총동맹은 노동자들에게 혁명적 노동조합이 하는 역할을 수행할 혁명적 농민 조직을, 나아가 반反권위주의적 원칙 위에 세워진 농민조합을 실현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아나키스트 총동맹은 노동인민인 대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드러나는 모든 과정에 참여해야 하며, 그러한 모든 경우에서 그들에게 조직, 인내, 공세의 정신을 가져다주어야 한다. 오직 이렇게만 노동자의 사회혁명에서 아나키스트 총동맹의 임무, 이론적 · 역사적 임무를 완수할 수 있으며, 그들의 해방 과정에서 조직화된 선봉이 될 수 있다.
네스토르 마흐노, 아이다 멧, 표트르 아르치노프, 발레프스키, 린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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