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1931년) 유럽과 세계의 불확실하고, 왜곡되어있으며, 불안정한 정치, 사회적 상황은 수많은 종류의 희망과 두려움을 야기하고, 언젠가 반드시 올 반란을 준비하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과제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언제나 중요했던 문제가 되살아난다. 어떻게 오늘날 여러 국가에서 드러나는 상황에 우리의 이상적인 열망을 적용시킬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이상을 논하는 것에서 실질적 행동으로 이행할 것인가?
우리의 운동은 특정인이나 문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자유로운 비판에 근거하여 있기에, 어떠한 전술을 택해야 하는가에 대한 다양하게 서로 다른 의견들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기에, 우리 중 누군가는 모든 활동을 이상을 완성하고 설파하는 데에 바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 이상이 이해되거나 따라오는 사람이 있는지, 아니면 그 이상이 현대의 대중 정서와 현존하는 물적 자원 속에서 실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러한 동지들은 개개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어쨋건 명확하게 아나키스트의 역할을 현존하는 억압의 체계를 부수고, 새로운 정부와 특권이 등장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만 한정하고 있다. 그들은 다른 모든 역할을 무시한다. 그리고 이 역할들은 사회를 자유의지주의적 경계에 따라 재조직하는 데에 있어 중요하고, 회피불가능하며, 미룰 수 없는 문제들이다.
그들은 사회의 재건설에 있어서는, 사전 준비나 계획이 없더라도 모든 것이 자발적으로 정돈될 것이라 믿는다. 신비로운 대중의 창조적 역량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다. 혹은 국가 폭력과 자본주의적 특권이 철폐되기만 한다면 모든 인민이 선하고 지적으로 변모하고, 이해관계의 충돌은 사라질 것이며 풍요, 평화, 조화는 세계를 훌륭하게 다스릴 것이다.
실천적이고자 하는 열망, 혹은 실천적인 것처럼 보이고자 하는 열망에 자극받은 다른 자들이 있다. 그들은 모든 ‘일반인들’의 문제에 대응하고, 이를 해결하고자하는 우리의 계획을 관철하기 위하여, 혁명에 뒤따라오는 어려움을 선제적으로 예비하고, 대중 다수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최소한 그들의 무지로부터 오는 적대감을 극복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들은 정당이나 고정된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순간적 열정과 흥미로 그 정신을 무장하고 있다.
내가 보기에, 두 태도 모두에는 장단점이 있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교조화되지 않는다면, 그들은 서로를 보완하여 이상적 목표에의 요구와 상황적 필요를 조정하며, 이로써 실천적 효율성을 확보하면서도 참된 자유와 정의를 향한 우리의 계획에 그야말로 신실하게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재건의 문제를 무시하는 것도, 완성되고 통일된 계획을 미리 준비하려는 것도 모두 오류다. 두 방식 모두, 서로 다른 방법을 통해, 우리 아나키스트들의 패배를, 권위주의 체제의 승리를 가져올 것이다. 진실은 그 둘 사이 어딘가에 있다.
정부가 파괴되고 자본가들이 축출된다면, 무엇을 해야할지 알고 있으며, 그를 수행할 준비가 된 이들의 개입이 없이 ‘모든 것은 스스로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만약 모든 인민들에게, 모두에게, 자신의 필요를 타인과의 합의를 통해 만들어내는 시도와 실험을 할 시간이 충분하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사회생활과 개인의 생활은 그러한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혁명 직후, 더 정확히는 반란의 그 날부터 대중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시급한 필요를 충족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생필품의 계속된 생산을 담보해야하고, 수도, 교통, 전기 등의 핵심 공공 서비스가 운용되는 것을 담보해야하며, 도시와 교외간의 교환을 유지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움들은 사라질 것이다. 노동은 실질적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재조직되어 더 쉽고, 매력적이 될 것이다. 이로써 비롯된 높은 생산성은 생산과 소비의 관계에 대한 계산을 불필요하게 만든다. 모두는 무더기에서 자기가 원하는 만큼 가져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도시는 사라질 것이고, 인구는 국토 전역의 모든 영역, 모든 집단으로 퍼져나갈 것이며, 이 과정에서 산업적 생산물은 보존되고 추가되면서 공감과 연대를 통해 인간 사회에 전체적으로 귀속될 것이다. 현대의 억압적이고 희생이 큰 복잡한 경제생활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전반적 자급자족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뿐 아니라, 미래를 고려할 때 떠올릴 수 있는 수천가지의 아름다운 일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늘의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혁명이 마술지팡이처럼 하룻밤 새에 급진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는 살아야 하기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 지 모르고, 필요한 것을 할 수 없다면, 다른 목표를 가진 자들이 이것을 대신 할 것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일반인’들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그들이야말로 대중의 다수를 대변하는 자들이고, 그들의 참여가 없이 해방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들의 지성과 주도권에 너무 크게 의존해서도 안된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훌륭한 자질이 많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가졌고, 그 잠재력은 언젠가는 그가 우리가 바라보는 바 이상적인 인간형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준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중대한 단점이 있다. 그리고 이 단점은, 전제정이 왜 등장하고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 상당부분을 설명한다. 그들은 생각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해방을 시도할 때, 그들은 언제나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고, 조직과 지침과 명령을 통해 책임감을 가져가주는 자들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성을 완전히 뒤집어 엎지 않는 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대신 생각해주고, 무엇을 하라고 지시해주는 것에 만족한다. 그 지시가 일반인들에게 일하고 복종할 의무만을 남긴다고 해도 말이다.
명령을 따르고자 하는 경향이라는 군중의 약점은 많은 혁명을 좌초시켜왔고, 다가올 혁명에 위협으로 남아있다
만약 군중이 바로 스스로를 돌볼 수 없다면, 자주적이고 결정을 할 수 있는 선량한 사람들이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긴급한 필요를 제공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것에서 우리는 권위주의적 정당과는 다른 방향을 택해야 한다.
권위주의자들은 분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권을 장악하고, 그들의 계획을 강제하는 방식을 택하려 한다. 그들은 신실하고, 진지하게 그들이 모두를 위해 좋은 일을 한다 믿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새로운 특권 계급을 구성하여 정부를 유지하고, 그 결과로써 전제정을 또 다른 전제정으로 이행할 뿐이다.
아나키스트들은 노예제 국가에서 자유로운 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대중의 필요를 만족시키는 데에 최소의 부하가 발생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실질적이고 즉각적으로 적용 가능한 생각들을 최대한 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아나키스트들은 지적 타성이나, 복종과 비행동의 경향을 촉발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해방하는 힘이 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의 자유로운 자주성을 위해서, 혁명은 인민의 수천가지의 다른 도덕적, 물질적 상황에 대응하여 수천가지의 다른 방향으로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이상에 가장 잘 호응하는 삶의 방식을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대중을 주도적 영혼과 자신을 위해여 행동하는 주체로 세워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해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회피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대중을 우리의 방향으로 몰아붙이는데 너무 열중한다면, 그것이 혁명의 날개를 꺾고, 우리가 개탄해 마지않는 정부처럼 기능할 것이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정부가 된다면, 우리는 다른 이들보다 더 나을 수 없다. 아마도 우리는 자유에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 올바르고 선을 행하고 있다고 강하게 믿고 있는 만큼, 우리는 언제라도 광신도가 되어 우리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이들을 공공선에 반하는 반혁명분자이자 적이라 치부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약 다른 이들이 하는 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모두의 자유가 보장되는 한 그것은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정말로 문제가 되는 것은, 인민들이 스스로 원하는 것을 하는가이다. 인민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어내는 것만이 유일하게 보장된 쟁취이기 때문이다. 대중의 의지에 의해 요구되고 도입된 것들만이 유일하게 결정적인 개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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